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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 않는 대학생들을 위한 쓴소리
[서평]다치바나 다카시의 <뇌를 단련하다>
김규종(satira) 기자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와 <도쿄대학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상당히 친숙한 다치바나 다카시의 도쿄대 교양학부 강의를 묶어 출간한 서책이 <뇌를 단련하다>이다. 부제 '도쿄대 강의 ⓛ 인간의 현재'가 달려있는 것으로 보아 역자와 출판사는 연작형태로 번역출판을 지속할 의향인 듯하다.

저자 다치바나는 도쿄대 불문학과를 졸업한 다음 '문예춘추'에 입사하였다가, 2년 만에 그만두고 다시 도쿄대 철학과에 입학하여 평론활동을 시작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그는 정치와 사회영역 뿐만 아니라, 우주와 뇌 분야에까지 이르는 다양한 영역에서 탁월한 문필활동을 전개하여 '시바 료타로' 상을 받는 등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일본의 최고 명문대학인 도쿄대학생들의 교양과 지식수준이 너무 낮다는 현실인식에 기초하여 다치바나는 교양학부 학생들이 감당하기에 버거울 정도의 강의를 이끌어나간다. 더욱이 그는 자신만만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설파하는데, 이런 점은 '일본의 이과교육은 19세기 이전 수준이다', '권위를 의심하라', '스승에게 반기를 들다'는 등의 항목에서 강렬하게 그 빛을 발한다.

"일본 고등학교의 물리와 화학에서 여러분이 배운 것의 대부분은 19세기 이전의 지식입니다. 지금 물리나 화학에서 19세기 이전에 얻은 지식과 20세기 이후에 얻은 지식을 비교하면 9대 1정도라고 해도 좋을 지경입니다. 요컨대, 여러분은 곧 21세기 최전선으로 내던져질 터인데, 여러분의 머릿속은 여전히 19세기 이전의 것들로 가득 차 있고, 20세기의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45-47쪽)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입학만 하면 졸업은 당연지사로 여겨지는 일본의 대학풍토와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도쿄대학생들을 저자는 날카롭게 비판한다. 대학졸업 후의 사회생활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지 않고 허송세월 하는 젊은이들을 향한 다치바나의 사자후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생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고 하겠다.

그런데 <뇌를 단련하다>에 담겨있는 내용들은 나와 같이 인문-사회과학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에게는 매우 생경하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저자는 현대사회의 근간을 인류가 20세기에 도달한 자연과학에서 찾고 있으며, 따라서 인문학도에게 보다 폭넓고 정치한 자연과학적 지식습득을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제11회 강의내용인 '대칭성과 그것의 파괴'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세상과 우주의 만물을 '대칭성의 원리'로 이해해왔던 과학자들에게 두 사람의 젊은 중국인 과학자가 도달한 결론 '패리티 보존법칙'의 파괴는 관습적인 사고방식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저자는 '보편성'의 주술로부터 해방될 것을 주장한다.

"이것이야말로 절대적인 진리이자 보편적인 진리다, 하는 것에는 대개 의아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며, 어느 날 전부 전복될 수 있다는 겁니다. 과학의 역사나 인간의 지의 역사도 다 그렇습니다. 역으로 그런 일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지의 역사가 빠르게 생성 발전하여 여기까지 온 것이지요... 따라서 진리라고 알려진 것이 뒤집히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356쪽)

여기서 그가 내세우는 전복(顚覆)의 사유는 <뇌를 단련하다> 곳곳에서 독자를 사로잡는데, '강의를 제껴라', '사전을 통째로 읽어라', '유급을 해라', '상식의 벽을 깨뜨려라' 등의 항목에서 그것은 구체적인 내용과 외양을 확보한다.

그는 폴 발레리의 산문 <테스트 씨와의 하룻밤>과 데카르트의 체험을 본보기로 들면서 전복의 사유, 즉 '지적인 쿠데타' 혹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강조한다. 앞으로 전개될 인생을 설계하면서 젊은 날 반드시 맞닥뜨려야 할 필요충분조건으로써 인식과 발상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라고 다치바나 다카시는 힘주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적 전환은 모든 연령층의 사람에게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데 반하여, 지적인 쿠데타는 열아홉에서 스물세살 사이에 가장 많이 일어납니다. 바로 여러분의 나이입니다. 지적인 쿠데타는 '산고와 흡사한 고뇌' 끝에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 고통이 전혀 없는, 그리하여 뇌가 늘 태평한 사람들에게는 평생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160쪽)

저자는 깊고도 다채로운 독서와 기록, 사유와 일상적인 실천을 통하여 자신이 도달한 지의 영역을 화려하게 펼쳐 보인다. 인문과학에서 시작하여 사회과학을 거쳐 자연과학에까지 미치는 그의 지적편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일종의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교양의 범주를 확산하여 편협한 지식인의 양산이 야기하는 폐해를 줄이자고 호소한다. '프로페셔널한 제너럴리스트', 즉 우리말로 전문적인 '팔방미인' 정도로 자신을 소개하면서도 다치바나는 "과학을 알고있는 철학자"로 불리고자 한다.

그는 스노의 저작 <두 문화와 과학혁명>(1959)을 예로 들면서 20세기에 보다 심화된 미분화와 세밀화 과정을 거쳐 상호이해를 포기한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소통불가능을 지적한다. 문과계 지식인의 반과학적 경향, 기초연구자와 응용연구자 사이의 몰이해, 생산분야 담당자와 순수연구자 사이의 괴리라는 3중의 장벽을 다치바나는 밝혀내는 것이다.

이런 논거에 기초하여 저자는 지난 세기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오늘을 사는 대학생들에게 광범하고 풍요로운 독서를 권장한다.

"사회에 나가면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지금의 10분의 1이나 20분의 1로 줄어듭니다. 그제야 학창시절에 책을 좀더 읽을 걸, 하고 생각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지닌 최대의 자원은 공부 가능한 시간입니다. 지금 그 시간을 배움에 쓰지 않는 사람은 자기의 가장 큰 자산을 무의미하게 하수구에 던져버리는 꼴과 마찬가지입니다." (250-251쪽)

오늘날 영상문화와 놀이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 저자 다치바나 다카시가 던지는 문제의식은 실로 엄중하다. 나날이 늘어가는 현대사회의 과학-기술적인 발견과 진척에 뒤쳐진 채 향락하면서 '지금'과 '여기'에 함몰될 것인지, 아니면, 드넓은 지의 세계로 과감하게 뛰어들어 지식의 생산자이자 수혜자가 될 것인지를 일본의 지식 전문가는 묻고 있는 것이다.



<뇌를 단련하다>, [도쿄대 강의 ⓛ 인간의 현재], 다치바나 다카시, 이규원 옮김, 청어람미디어, 2004년.


2004/03/21 오후 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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