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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제환의 Inter-Tainment] 문화와 상품의 연결 고리는?


옥제환 (컬럼니스트)
2005/01/21

신문이 진열되어 있는 신문가판대에서 사람들은 신문값을 지불하고 신문을 집는다. 돈을 지불하는 순간 신문은 돈을 지불한 사람의 소유가 되고 신문의 소유자가 된 사람은 신문을 읽는다. 너무나 당연하게 다른 신문은 가판대에 있기 때문이고, 누군가의 명백한 재산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냥 집어 가지 않는다.

그러나 신문이 지하철의 선반 위나 공원 벤치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면 그것은 또 얘기가 다르다. 그것은 분명히 누군가의 재산일 수 있지만 아무의 재산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은 그 신문을 집어서 읽거나 깔고 앉을 수 있다.

이와 같은 행위에 대해서 아무도 죄책감을 갖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굳이 “왜?”냐고 그 이유를 물을 때 “그건 ‘관습법’이오”라고 대답하면 시대상을 반영한 현답이 될 수 있을까? 최소한 위트는 될지 모르겠다.

누군가 보장받아야 될 재산을 가지고 있다면, 또한 그것이 명백하게 침해당했다면 당연히 그 재산과 소유자는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사유 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체제를 인정하지 않고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파렴치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고 ‘공산주의자’로 몰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비약이 조금 심했는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꺼내려던 얘기는 이번에 발효된 개정저작권법에 관한 것이다. 바깥세상 돌아가는 일에 다소 무관심한 사람이라도 최근 며칠간 인터넷과 언론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개정저작권법’이니 ‘전송권’ 부여니 하는 얘기들은 심심찮게 들었을 것이다. 그 사회적 충격이 이렇게 부칙에 의해 시행 이후 후폭풍이 몰아치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설마’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리라.

이 음원에 관한 개정저작권법(법률 제07233호)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 우리가 들어온 대부분의 음악(최신 가요뿐이 아니라 팝, 클래식, 민요에 이르기까지)은 무단으로 홈페이지나 블로그, 홈피 등에 올릴 수 없고, 공공장소에서도 틀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조금 더 강하게 설명하자면 우리가 노트에 노래 가사를 적어 가지고 다닌다면 이것도 위법행위가 되는 것이다. 가사도 명백히 저작 인접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없던 법이 새로 생긴 것도 아니라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놀라워하고 있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MP3 플레이어를 통해 음악을 듣고 있고, 공공장소에서 음악을 접하며 살고 있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의 가사를 몇 번이고 고쳐 적으며 외우던 시절도 있었다. 분명히 누군가의 재산일지 모르지만 음악은 그렇게 우리 사회에 ‘재산’과 ‘소유’라는 인식보다 ‘문화’, ‘자유’, ‘사랑’에 가까운 인식으로 자리잡아 왔다.

그래서 실은 최근에서야 MP3 음원의 불법 다운로드가 공론화 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아, 이게 잘못된 것이로구나. 누군가 피해를 입는 사람이 있구나’라고 인지하게 되었다. 그 전까지 음악은 당연하게 ‘무료’였고, TV나 라디오를 켜면 접할 수 있는 ‘공기 중의 다른 성분’과 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사회가 MP3를 통해 오히려 조금씩 자각해가고 있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인류가 수백 년 동안 관습적으로 ‘무료’라고 알고 있던 ‘무엇’이 실은 누군가의 재산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치루고 누려야 한다는 인식으로의 일순간 전환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이번에 시행된 개정저작권법에 대한 사회적 파장을 보면서, 세상에는 정당하지만, 그 정당함을 무조건 내세우기에 앞서 먼저 숨통을 트여주고 그 정당함을 정당하게 주장하는 운영의 묘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무형의 재산에 대해, 이제 우리가 조금씩 인식해 가고 있고, 쉽진 않지만 그 재산적 가치를 존중하는 자세를 조금씩 체득하고 있는 초기에 어떤 성장통도 없이 세상을 바꿔 보겠다는 욕심은 ‘명분이 있고 옳다고 하더라도 미숙했다’고 평가받을 만 하다.

정부는 이에 대해 시스템을 조금 더 이해해야 했고, 시간을 두고 서서히, 그러나 힘있게 드라이브 했어야 했다.



MP3 플레이어로 세계적인 기술력을 인정받고 시장성을 가진 업체나, 최대의 음원과 콘텐츠를 가진 업체를 고사시키지 않더라도, 개별 업체의 경쟁력을 국가경쟁력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한 고찰을 했어야 했다.

‘시스템의 보완’으로도 서서히,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런 극단적이고 서툰 방법으로 오히려 ‘재산권을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의 그 정당성이 훼손되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

마케팅에도 공짜 마케팅이 있다. 고객들에게 제품이나 샘플을 무료로 나눠준 후에 고객들이 사용하게 되고 점차 그 제품이 필요하게 되면 가격을 받아서 제품을 공급하는 마케팅 기법이다.

이를 테면 온라인 게임의 베타서비스가 그렇다. 유저들이 무료로 게임을 하다가 조금씩 중독이 되면 유료화를 실시한다. 물론 정식 서비스를 하기 전에 오류를 고친다거나 더 나은 게임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결국은 홍보와 몰입을 위한 마케팅 수단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부기관은 국민을 상대로 마케팅을 하려 하는 것인가?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읽은 시집에서 마음에 드는 시가 있어 동호회 게시판에 그 시를 적었다면 저작권을 위반하게 되는 것이다. 블로그나 홈피가 무작정 다른 사람이 만든 컨텐츠가 뉴스 기사로 넘치는 일은 줄어들겠지만 참 재미가 없어질 것 같다.

당연히 보호받아야 될 재산에 대해 권리를 찾아주는 것은 옳은 일이고, 유형이든 무형이든 좋은 작품, 혹은 제품을 만든 사람에게 그와 같은 권리와 이익을 안겨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에 앞서 정부가 이러한 극단적인 자세로 꼬인 매듭을 끊어 버리는 것보다 더 인내를 가지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시스템과 교육 등을 통해 침착하게 매듭을 풀어내는 지혜를 보여주지 못한 점은 대단히 아쉬움을 남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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