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닷컴(www.kungree.com)에 올려진 글을 퍼왔습니다.
1학기 수시붙고나서 문학선생님이 책 2권 "한국의 교양을 읽는다"와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를 주시면서 "지식의 최전선"도 꼭 읽어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사서 보았다. 책이 너무 두꺼워서 읽기가 너무 거북스러웠다. 그러나 이 책은 지금 현재의 기술을 너무나 잘 소개해주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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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최전선
김호기,임경순,최혜실 외 52인 공저
한길사, 2002.


{지식의 최전선}은 다양한 요리가 푸짐하게 나오는 뷔페식 상차림이다. 문화, 기술, 과학, 생명복제, 마음, 사회 정책, 인문학, 사회과학 등 8개의 큰 주제 아래 52명의 필자들이 마련한 70개의 메뉴를 아우른다. 독자로서는 그 많은 메뉴를 어떻게 소화할 것인지 걱정이 들 법도 하지만 안심해도 좋다. '관념적인 이론이나 주장을 가능한 한 배제하고 지식 현장의 생생한 정보를 가르치기가 아닌 보여주기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 기획 의도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첫 장인 '나에게로 다가오는 문화, 나로부터 만들어지는 문화'는 문화이론이 아니라 문화 현장의 흐름을 진단한다. 디지털 영화, 한국 영화의 현재와 미래, 3D 애니메이션, 온라인 만화, 온라인 게임, 모바일 네트워크, 멀티미디어 아트, 이 정도 메뉴면 최전선이라는 제목의 말이 명실상부임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장호준(영화감독)의 글 '디지털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만드는 영화'의 일부다. '디지털 영화는 기존의 필름으로 제작된 영화와는 다른 형식과 존재의 미학을 가지고 있다. 비록 이전의 영화에 바탕을 두고는 있지만 그것보다 새로울 수 있고 더욱 더 독창적일 수 있는 디지털 영화에서 필요로 하는 미학은 이전 그 어떤 예술과도 분명한 변별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결정하고 정리해야 할 역할을 아날로그 시대를 지나 디지털 시대를 열고 있는 우리 디지털 1세대의 몫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이 책이 각 분야의 트렌드를 피상적으로 전달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지식과 문화의 최전선에서 활동 중인 사람들의 생생한 육성 그 자체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개인이 컴퓨터에 익숙해지고 전문장비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디지털 영상, 음향장비를 사용하게 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 담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의 형식에 맞게 만들어낼 수 있는 물리적인 여건이 마련되었다는 것.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정리하고 그것이 영화 분야에서 지니는 의미까지 읽어낸다는 점이 이 책의 전체적인 미덕을 대변한다.

한편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바 없는 지식의 최전선을 소개한다는 의의도 각별하다. 예컨대 김석수 교수(경북대 철학과)의 '야만의 시대, 휴머니즘에 사형을 선고한다'는 기존의 인문주의의 이상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천명하고 인문학적 교육이 현대사회의 야만성을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사뭇 도발적인 주장을 내놓아 독일 지성계에 파문을 던진 철학자, 슬로터디예크의 문제 의식을 다룬다.

슬로터디예크는 흥미롭게도 고대 희랍의 견유학파가 지닌 긍정적인 측면, 즉 탈형이상학적인 현실적 삶에 대한 긍정을 새롭게 주장한다. 추상적인 세계의 지혜가 아니라 살면서 사유하고 행동하는 구체적인 현실의 몸 속에 진정한 지혜가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몸을 가진 개체로서의 인간이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을 모색하는 슬로터디예크가 {유럽의 도가주의}(Eurotaoism)이라는 제목의 저서를 내놓은 것이 예사롭지 않다. 전통 동아시아의 도가 사상은 인지적 자아나 도덕적 자아와는 다른 신체적 자아의 다양한 가능성을 고도로 발전시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밖에 한국 시민운동이 제3세계 개발에 눈을 돌려야 할 시점에 와 있음을 지적하면서, 그것이야말로 한국 시민운동이 세계시민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길임을 주장하는 조효제 교수(성공회대)의 글은 '바로 지금 여기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말한다는 점에서 필독의 가치가 있다. NGO 운동에 대한 이해를 위해 시민사회 개념의 역사적 연원까지 되짚어 보고 NGO 운동의 변천 과정을 되새긴다는 점이 범상치 않다. 요컨대 이 책은 개념의 역사, 학문 분야의 연구사로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서 있는 최전선까지 조망한다.

워낙 다양한 분야의 최전선을 가늠하다 보니 전문적인 술어(technical terms)가 많이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역시 안심해도 된다. 한 편의 글이 끝날 때마다 등장하는 '개념풀이와 인물소개', '더 읽어야 할 책', '가볼 만한 사이트' 등이 소화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지니는 한계가 있다면? 최전선을 가늠하는 작업이기에 시의성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생명복제, 디지털 기술 등을 다루는 부분이 대표적으로 그러하며, '더 읽어야 할 책', '가볼 만한 사이트' 등도 멀지 않은 장래에 낡은 내용이 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그런 한계에 대한 일종의 책임은 이 책 혹은 필자들에게 있지 않다. 이 책의 부제목이기도 한 '세상을 변화시키는 더 새롭고 더 창조적인 발상들'은 우리들 모두의 몫이 아니던가.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교양} 옆에 꽂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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