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일. 삼일절. 기미년에 일어난 독립운동(기미독립운동[己未獨立運動])이 일어난 날.

대한제국이 사라지고, 일본 제국이 1910년부터 대한제국의 매국노들을 통해 조선반도朝鮮半島(한반도韓半島)를 강제점령하여 식민통치를 할 시기인 1919년.

유럽에서는 1914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인에게 살해당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황태자의 죽음을 복수하고자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세르비아간의 전쟁이 독일제국, 오스만투르크제국,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등의 세계 여러나라들이 참여한  제1차세계대전으로 변화하면서 전세계가 전쟁터가 되었다 1918년에 전쟁이 끝나게 됩니다.

1918년 미국 대통령 월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 발표('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자') 를 하였고 1919년 1월 18일부터 나온 파리 강화 회의(Paris Peace Conference)에서는 제 1차 세계 대전의 종결과 함께 전범국 처리를 논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조선의 지식인들은 월슨의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조선반도에서 일본에 독립을 할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시기 고종황제가 승하하였고 1919년 3월 3일 인산일이였고, 항간에 고종이 일본사람에게 독살당했다는 독살설과 미국의 대통령 월슨의 '민족자결주의'의 결합으로 일어난 운동이 삼일독립운동 또는 기미독립운동(己未獨立運動)입니다. 

이 3월 1일에 일어난 운동에 영향을 받아, 중국 북경(베이징,北京, Peking, Beijing)에서 북경대학생들이 5.4운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삼일절은 단순한 휴가가 아니라 중국에도 영향을 준 엄청난 사건이기도 하지요.

기미독립운동(己未獨立運動)에서 보다시피, 나라 잃은 설움을 가진 사람들이 나라를 찾기 위해서 벌인 고통이 어떠했을까? 란 생각을 해봅니다.

나라가 없을 시기에 조선 사람들은 일본제국의 이등신민[二等臣民] (일등은 일본인)으로 일제가 수탈과 징발, 징용등 시키는데로 끌려가거나 살아가야 했던 설움, 슬픔등. 

 

지금도 일제의 피해자들이 생존해계시지만, 몇십년 이후면 피해자들도 돌아가실겁니다. 그러나 일본은 아직도 사과를 안하고 있으니 씁슬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사라지니 사과 안하고 버티기만 하는 듯합니다. (아직도 일본 정부의 태도를 보다 독일 정부의 태도를 보면 참 일본 정부가 한심하게 보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일제의 고통을 직접 경험하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생각 납니다.

저의 외할아버지는 어린 시절 기미년(1919년) 독립운동을 보셨을테고, 청년시절인 해방전, 태평양전쟁때에는 일본으로 징용을 끌려가 고생을 죽어라 하셨고 (그 시절엔 경북선 철도 선로도 떼어가고, 가마솥, 숟가락, 젓가락, 쇠그릇등 전쟁에 쓸 쇠를 와 식량을 수탈하던 때이지요), 6.25전쟁때 죽을뻔하셨다는 이야기를 어머니나 어르신들로부터 어릴때부터 듣다보니...

역동의 근현대사에서 꾿꾿하게 생존하신 외조부님을 보면 존경스습니다.

 

TV에 일제 징용 피해자나 위안부 이야기등의 뉴스에 나오는 분들 보면 가끔 외할아버지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일제의 수탈 및 징용에 끌려가신 분들을 생각하다보니 삼일절을 다시금 곱씹어봅니다.

그리고 나라 없는 서민의 설움을 뼈져리게 느끼신 분들이나, 나라 독립을 위해 노력한 순국 선열들을 생각할때마다, 이 나라를 있게한 분들에 대해 존경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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