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인 2015년 7월 4일, 사회생활을 한지 만 4년이 되었다. 

오늘인 토요일, 사회생활 만 4년간의 기억을 회고를 해보았다.


사회생활 만 4년을 회고하기 위하여 그동안 작성한 글을 쭉 훑어보았고, 예전 생각을 해보았다. 

 

2011년 7월 3일, 대만 타오위엔국제공항(桃園國際機場, Taiwan Taoyuan International Airport, TPE)에서 대한민국 인천국제공항(Incheon International Airport, ICN)으로 가는 중화항공 비행기에서 찍은 비행기 날개 사진.


2011년 7월 1일~2011년 7월 3일 연구실 생활을 정리하고 대만 타이페이(臺灣 台北, Taipei Taiwan)로 현실도피여행이자 첫 해외여행을 해보았다. 이후  2011년 7월 4일, 첫 회사에 입사를 했을때 생각이 난다.


4년전 대학원생활하면서 인생이 꼬인 듯한 경험을 해보았다. 

옆 연구실 박사과정들이 연구실을 빼앗기위해 후배인 나를 엄청 갈굼. 예를들면, 에어콘 리모컨을 자기들만 가지게 하고, 리모컨 없으면 작동 못하도록 손질하여, 에어콘 바람 못쐬게 하고, 날 더운 연구실에서 에어콘 못쐬게 함, 내가 천호동 산다니깐 못사는 동네라고 갈구거나 (참고로 천호동이 어쩌고 하던 그 박사과정은 삼선동에 산다고 함. 삼선동이 잘사는 부자 동네도 아니고, -_-;;)

별별 이유로 갈굼하는거에 연구실에 있는것도 껄끄럽게 되었고, 연구실에 있는 거 자체가 스트레스 받는지라 성과도 안나고 지도 교수님과 그닥 관계도 바닥이 되었음.


옆 연구실 박사과정분들에게 스트레스를 엄청 심하게 받은데다, 같이 연구하던 사람도 없고 혼자에 도와주는 사람도 없으니 연구 성과가 나올리가...  -_-;; 나의 대학원 생활은 그냥 꼬였다고 봐야지.


석사 졸업을 한학기 늦게 하고, 거기에 전문연구요원 TO도 거의 없다시피하고, 대기업 TO는 전직TO밖에 없다보니, 전직 노릴까이런 생각을 하였던 적이있다.

이때 나에게 생소한 분야인 GIS를 하는 업체에서 전문연구요원을 뽑는다고 해서 입사를 했었다. 

입사를 하고 나서 잠시나마 대전에서의 생활을 해보았다, 그리고 6개월 뒤에 나를 뽑았던 GIS개발하시던 윗분들이 대거 퇴사하고, 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


거기에 6개월동안 GIS를 실무로 많이 배우지 않고, 사수들이 도망가다보니 SI 사이트에서 삽만 푸고 기술를 배운건 거의 없다 시피하다.

제자리 걸음으로 남이 시키는대로만 일하다보니 뭐 실력이 늘리가 있나? 거의 정치만 배운것 같다. 


생각해보니, 뻔뻔하게 자리 잡는 방법, 갑을관계의 정치, 제안서 잘 써서 잘 보이기, 파견가서 갑질에서 살아남기 정도?


SI업을 하다보니 원청 회사직원도 고달프다는 것을 느꼈고, 원청 회사 직원분 보니깐 대기업에 대한 환상도 많이 깨졌음. 갑질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 위에서 원가절감등을 시키니깐 자연스럽게 갑질을 배우게 되는 것도 지켜보았음.

이걸로 SI업을 하는 대기업으로 취업하는걸 하기가 싫어졌음.


2012년도에 사수분이 갑작스레 지병으로 사망하였으나, 갑회사 발주 프로젝트 마감때문에 프로젝트 하던 곳 근처서 장례식하는 것도 못보고 떠나던 기억도 나고. 


그리고 2014년 초반 프로젝트 도중,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중간급 간부분들이 퇴사하여 프로젝트하면서 받을 돈 못받고, 갑 회사 직원에게 욕 엄청 먹고, 이 바닥에서 발 못들이게 하겠다는 협박도 받음. 그리고 프로젝트 수주 받은 을 회사 직원들에게 당연 협박도 받아보고, 그리고 회유("너네회사 돈 없다면서, 돈 줄테니깐 프로젝트 마무리나 해라") , 


을회사가 나를 상거지도 아닌데 노예취급, 거지 취급이나 받고, 첫 직장이 입사후부터 쭉 막장으로 치달아 인력관리도 막장수준으로 변하고 월급도 체불되고, 결국 일할 마음이 사라지고 그냥 쉬고 싶었다.  


월급 체불되고 수주가 안되어, 회사에서 할일이 없어 놀때(내부 프로젝트는 진행하나 대충대충 하고 퇴근후 공부만 함), 원래 정보관리기술사 자격증 취득 하고프나, 내가 기술사 자격증 취득할수 있을지 한번 테스트해보고자 CISA 공부를 했는데, 공부한 결과 CISA자격을 얻어서 기분이 좋았고 (이때 실패한 인생이 보상되는 느낌이 듦.) 

  

건설회사같이 돌아가는 SI회사의 갑을병정 하도급에 질렸고, 평생 을,병,정 질만 하다 퇴물이 될것 같은 생각에 회사를 그만 두고 서비스업을 하는 회사로 이직을 하였다.


코딩으로 실력이 늘지 않고 정치와 스트레스만 들고 병을 얻은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할때 첫회사의 뼈아픈 기억이 난다.


회사가 휘청휘청거리가 맛가는 타이밍이 어떤 때인지도 알고, 회사가 망할때엔 핵심인력이 제일 먼저 나간다는 것도 지켜보았다. 

아버지가 예전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회사에서 일하다 임금 체불되고, 회사가 망하는 과정을 경험한걸 아들인 나도 직접 경험해보니, 아버지의 스트레스를 알게 되었음.

그래도 다행인건 나는 젊을때에 망함을 경험해보았으니 망하지 않는 회사가 어떤 것인지를 일찍 깨달았다는 것? 

 

이직 준비할때엔 IT가 주가 되는 회사로 이직하기 위하여, 주로 IT가 주가되는 회사로 이력서를 제출해봄. 대전에 있는 여러 연구소쪽도 지원해보고 대기업도 지원해보고 별별 경험을 해보았음. 

첫회사에서 사직서를 제출하고 이직하기전, 전문연구요원 복무 끝나고 바로 도피성으로 일본 도쿄 여행을 해보았던 기억도.


2014년 8월 24일 일요일-2014년 8월 27일 수요일간 일본 도쿄(東京), 에노시마(江ノ島), 가마쿠라(鎌倉) 여행. 가마쿠라의 대불 앞에서 찍은 사진. 2014년 8월24일부터 전문연구요원복무만료로 민간인이 되었습니다. 24일 아침 8시비행기로 김포국제공항으로 출국할때 공항 출국심사 직원에게 "저 민간인 맞아요?"하고 물었던 게 생각났음

 


그 다음으로 들어간 회사는 회사가 급 성장하여 코스닥 상장도 하였고 (드디어 나도 코스닥 상장사 직원), 열심히 하면 성과가 나오니 일로만 스트레스받아서 나름 괜찮음. 

그리고 첫 회사에서 잘못 배웠던 습관때문에 많이 혼나고, 코딩으로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것을 느꼈다. 서비스 하는 회사에 일하다보니 나의 코딩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사고 없는 무중단 개발 및 운영에 대하여 많이 배우고 있음.


여기서는 회사도 성장하고 나도 성장하는 걸 느껴서 기분이 좋음을 느낌. 그리고 SI막장 생활을 마치고 서비스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최고의 개발자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음.


사회생활을 한지 만 4년, 5년차. 아직도 부족하다는 걸 많이 느낀다. 앞으로도 크게 성장하도록 노력하겠고, 회사를 크게 키우도록 노력을 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에게 만족을 주기 위하여 노력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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