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 일식(Eclipse)가 있습니다.

가만보디 Eclipse라는 오픈소스 프로그램이 있었지;; (이제 컴공과공부한다고 그런가??)

NASA에서 보니까 http://sunearth.gsfc.nasa.gov/eclipse/SEmono/ASE2005/ASE2005.html 10월 3일에서 일식이 있는데, 아프리카 지역에서 볼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식은 언제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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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astralleno.mireene.com BlogIcon Astralleno 2005.10.08 20:30

    살아있는 동안에 한번이라도 올까요 ㅜㅜ

ZDNet기사입니다.
Java에 대해서 요즘 관심이 부쩍 늘었습니다.
자바가 OS를 가리지 않고, 컴퓨터뿐만 아니라 가전제품등에 쓰이니 정말 배우고 싶네요.

자바의 아버지 고슬링 「자바는 계속 진화중」
[Stephen Shankland(ZDNet Korea) 01/07/2005


10년 전, 썬은 자신에게 미래 지향적이라는 명성을 얻게 해줌과 동시에 컴퓨터 업계 곳곳에 뿌리를 내린 소프트웨어인 ‘자바’를 세상에 처음 내놓았다. 제임스 고슬링이 바로 자바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고슬링은 1990년대 초 자바를 구상한 후 코드명 ‘그린(Green)’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이 프로젝트가 향후 자바가 됐다. 자바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모든 컴퓨터가 커스터마이징을 거치지 않고도 다양한 컴퓨팅 기기에서 운영될 수 있도록 하자는 데서 출발했다. 예를 들면 자바 가상 머신을 장착한 휴대폰용 게임을 다른 컴퓨터에서도 운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자바가 지난 10년간 순탄대로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다. 이 프로젝트의 초기 멤버인 MS가 약간 다른 형식의 자바 윈도우 버전을 개발하면서 7년 동안이나 법정 공방에 시달리기도 했다. 자바 프로그램의 보편성이 윈도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MS가 깨닫고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자바는 다기능 장비, PC, 서버 등에 적합한 다른 기능 개발에 주안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썬은 자바 제어권을 다른 업체들과 잘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이제는 IBM을 비롯해 많은 기업들이 자바의 핵심 컴포넌트를 오픈소스로 공개해 달라고 썬에 요청하고 있다.

숱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바는 이제 컴퓨팅 분야에서 확고한 입지를 굳혔다. 썬 회장 스콧 맥닐리가 과장된 표현을 종종 사용하기는 하지만 지난 28일 자바원(JavaOne)에서의 발표는 그리 과장된 것만이 아니었다.

맥닐리는 “7, 8, 9년 전 자바원에 대한 기조 연설을 들었다면 아마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당시 썬의 공언은 단순히 과장된 것만이 아니었다. 또 자바가 어떤 방식으로 변화할지에 대해서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었다”라고 밝혔다.

이번 주에 열리고 있는 자바원 행사장에서 고슬링은 길게 드리운 백발에 청바지, 티셔츠, 버켄스탁 샌들 등 스포티 컨셉을 고수한 차림으로 나타났다. “나이든 히피 같아요.” 올해 50세가 된 자바 창시자의 다소 상기된 모습이 담긴 비디오 화면 속의 딸의 멘트다.

CNET News.com에서는 고슬링을 만나 자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자바를 처음 설계할 때에도 지금과 같은 모습을 구상했나?
그린 프로젝트 시절에는 아주 먼 미래에 대해 상당히 많은 얘기를 나눈 바 있다. 당시에 자바 시나리오를 담은 소책자를 만들었는데 자바 설계의 상당 부분이 이 시나리오에 포함돼 있던 것들이다.

나에게는 자바가 SF보다 더 흥분되는 것이다.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바람이 부는 방향을 보고 앞을 예측한다. 기술에 대한 예측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단지 추측만 하는 것과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나는 무어의 법칙이 본 궤도에 올랐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점들을 네트워킹으로 연결하는 것은 상당히 쉬운 일이었다.

다양한 기술이 결국에는 이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분명히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보안, 신뢰성, 이식성 등에 관한 이슈도 이미 문제로 대두되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에 해답을 주는 개발 작업에 실제로 참여하게 된 것은 사실 놀랄만한 일이다.

하지만 초기의 그린 프로젝트는 가전제품을 겨냥해서 시작된 것 아닌가?
처음 그린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여러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고 나서 가전 분야, 휴대폰, 임베디드 제어 시스템 등 여러 분야에서 모두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심지어는 엘리베이터, 기관차, 조명 제어 시스템, 그리고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눴으며 VCR, TV 개발자들의 의견도 들었다.

그린 프로젝트는 첫 단계부터 프로토타입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엄청나게 집중해야 했다. 가전 분야를 선택한 것은 단지 다른 분야보다 더 흥미롭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자 여러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리는 스스로에게 다시 묻게 됐다. 이 프로젝트에 자생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때 마침 타임워너가 자사의 모든 서비스를 네트워크로 구성한다는 제안요청서를 들고 왔다. 홈네트워크, 네트워크상의 음성·비디오, 양방향 콘텐츠 등등... 그야말로 환상적인 제안이었다. 눈이 번쩍 뜨였다. “그래! 바로 이거야. 우리가 찾던 거야. 우리가 개발하려는 바로 그거라구!” 그래서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양방향 TV의 초기 모습이었나?
그렇다. 정말 꿈같은 제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도 그걸 해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그러나 타임워너 프로젝트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 때문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으며, 우리는 입찰에서 떨어졌다. 그 후에 입찰에서 SGI에 패한 것이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SGI는 이 프로젝트를 완수하려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거액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결국 자금 압박에 직면하고 말았다.

당시에 자바가 이처럼 협소한 범위에서만 이용될 것으로 생각했나, 아니면 컴퓨팅 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나?
자바를 업계 전반으로 확산시킨다는 계획은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각 분야의 얘기를 듣고 나서는 모든 분야에서 이와 유사한 작업이 초보적인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모든 분야에서 디지털 컨트롤러를 갖춘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시스템간의 비호환성이었다. 모든 것을 통합해야 한다는 점을 피부로 느끼려면 이 문제를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 이른바 자동차 파괴 경기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외부에 서 있다면 모든 자동차들이 무대 중앙으로 돌진한다는 사실을 금새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지적에 따라 자바는 상호운영성 문제를 몇몇 해결했다. 그러나 MS는 닷넷을 들고 나오면서 자체 전략을 선택했다. 닷넷은 더 높은 수준의 상호운영성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닷넷과 자바를 하나의 기술로 통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어떤 측면에서 보면 그 부분이 바로 웹서비스가 하는 일이다.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양자가 결합을 원치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결합시킬 수 없다.

MS는 차별화라는 분명한 정책을 갖고 있다. 다른 업체와 다르게 보이고 싶은 것이다. 실제로도 MS는 상당히 꼿꼿한 편으로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자바 커뮤니티의 열성 회원이었지만 나중에 이 생각이 잘못됐다고 판단하고 뛰쳐나갔다.

그때가 1995년이었나? 1996년이었나?
아마 1996년이었던 것 같다. 공동으로 작업한다는 것은 공동 작업을 좋아해야 가능하다. 그러나 MS에게는 공동 작업이 길고 긴 교육과정에 불과했다. 그리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며, 아마 가까워지려고 했던 것 같다.

우리는 MS와 엄청나게 많은 일을 했지만 약간의 거리감이 존재했다. 인터페이스, 웹서비스, 상호운용성 등을 공동으로 추진하려고 노력했다.

C# 언어로 닷넷용 프로그램을 자바 가상 머신에 추가할 수 있나?
가능하긴 하다. 그러나 아주 중요하면서도 유일한 문제는 닷넷이 자주 사용하는 부분인 불안전 모드의 존재이다. 내가 중시하는 원칙 중 하나는 불안전 모드는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불안전이란 무슨 의미인가?
닷넷에는 관리되는 코드와 관리되지 않는 코드 개념이 존재한다. 관리되는 코드는 보안과 신뢰성에 관해 언급할 수 있지만 관리되지 않는 코드는 그 어떤 것에도 의존할 수가 없다.

메모리 훼손은 올바르게 조작했는지 만으로는 구별이 안된다. 프로그램이 실제로 어떤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지 분석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관리되지 않는 코드 유형인 C 프로그램은 불가사의한 방식을 거쳐 실패하는 경향이 있다. C 언어는 보안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암시만 주고는 종료돼 버린다. 또한 C에서는 진행 중인 작업이 무엇인지 속일 수 있어야 하지만 자바에서는 진행되는 작업의 성격을 속일 수가 없다.

MS를 자바 커뮤니티 프로세스(JCP)에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전혀 모르겠다. 그렉 파파도풀로스(썬 CTO)한테 물어보는 게 나을 거다.

MS와 6개월간 누렸던 허니문 기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있나?
MS가 JCP의 다른 커뮤니티와 함께 작업할 수 있게 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이번에 썬의 자바 애플리케이션 서버를 글래스피시 프로젝트를 통해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로 발표했는데. 자바 스탠다드 에디션을 오픈소스에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존재하나?
그럴 수도 있다. 우리가 자바 스탠다드 에디션을 추진하는 방법은 상당 부분이 오픈소스 프로젝트와 매우 유사하다. 주요 분할 라인은 썬이 라이선스를 갖고 있고, 테스팅 요구사항도 있다.

자바가 실제로 자주 사용되는 곳에서 조사를 해봤는데, 전체 테스팅이 상당히 중요한 이슈로 부각됐다. 오픈소스 커뮤니티에는 한편으로는 “좋다”라고 하면서도 테스트를 진행하려고 하면 동의하기는 싫다는 사람들이 꽤 많다.

언젠가는 자바 스탠다드 에디션을 오픈소스로 발표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기가 언제일지는 커뮤니티가 얼마나 편안하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를 정말 화나게 하는 부정적인 사례들은 상당히 많다.

자바스크립트에 대해 사람들이 경험한 것을 한 번 들여다봐라. 자바스크립트는 자바와는 연관되지 않은 향상된 웹페이지용 언어다. 상호운영성 문제가 존재하는 자바스크립트의 여러 기능들은 웹페이지 제작자들에게는 악몽이나 다름없다.

이 브라우저에서 자바스크립트를 실행하려면 이렇게 해라, 저 브라우저에서는 저렇게 해라… 자바 세계의 사람들이 자바스크립트 매뉴얼만 믿고 시키는 대로 하다가는 정말 끔찍하단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BEA 시스템즈 같은 회사들은 자사의 자바 애플리케이션 서버에 해당 소프트웨어를 운영하는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기능을 추가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자바 코드가 결국 이식성이 부족하다는 말 아닌가?
그렇다. 그 부분이 문제다. 하지만 최소한 기존에 해왔던 방식으로 본다면 특별한 기능은 특별한 기능일 뿐이다. 자바는 패키지명을 붙일 때 상당히 편리한 측면이 있다. API를 사용할 때 공개적인 표준 API, 즉 ‘java.패키지명’으로 시작되는 명칭을 분명히 알고 사용해야 한다. 사유 소프트웨어의 경우 ‘com.bea.패키지명’이나 다른 식으로 이름을 붙인다.

이는 개발자들이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하는 사항이다. 개발자들은 실제로 이식성에 대해 상당히 신경을 쓴다. com.bea를 작성해야 하는 경우 개발자들은 갈고리가 살갗을 후벼파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자바스크립트 세계에서 어려운 문제는 개발자가 이 브라우저 혹은 저 브라우저에 대해 특정 기능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제로는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지금까지 지켜봤을 때 발전해온 방식은 어떤 아이디어를 가진 애플리케이션 서버 업체와 함께 일하는 것이다. 이 경우 대다수 사람들이 이 아이디어가 좋다고 인정하게 되며 때로는 자바 스펙 요청(JSR)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이 회사의 두 번째나 세 번째 버전은 표준 자바 프레임워크 안에서 만들어지게 된다.

자바를 오픈소스로 발표하고, 브랜딩을 통해 호환성을 제어할 수는 없나? 당신은 자바 명칭의 사용을 허가하기 전에 소프트웨어에 대한 인증을 요구할 수 있지 않나?
그 부분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은 논의가 있었다. 썬은 민주적인 조직이며 일부에서는 그같은 아이디어가 좋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사람보다 부정적인 사람이 더 많다.

당신은 부정적인 편에 속하나?
대부분의 경우 나는 긍정적인 편에 속한다. 하지만 두 가지 입장을 모두 수용해야 한다.

5년 전과 지금의 자바 작업을 비교한다면?
지난 5년 동안의 작업과 현재 작업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자바가 많은 기간 시스템의 중심부에서 역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상당히 보수적이기도 하다.

매일 밤 수천억 달러의 금융 거래를 처리하는 대형 은행이라면 작은 버그조차도 엄청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초기에는 복잡한 문제만 해결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어떤 부분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지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그동안 수정했던 버그들은 특이한 작업을 하는 누군가에게 모두 문제를 일으켰다. 이 점이 매우 세심한 규율로 자리잡았다.

썬은 그루비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자바 세계와 스크립팅 언어를 더욱 밀접하게 연계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프로그래밍 언어가 PHP, 펄, 혹은 파이썬 등 스크립팅 언어와 뭐가 다른지 정확히 모르겠다.
맞는 지적이다. 수없이 많은 다양한 언어가 존재한다. 같은 용어라도 사람들마다 다르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스크립팅 언어를 말할 때는 대개 개발자들이 정말 신속하게 무언가를 내놓을 수 있고, 몇 분 내에 데모를 보여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프로그램이 얼마나 빠르게 동작하는지, 확장성은 좋은지, 얼마나 큰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지 등은 두 번째 고려사항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자바를 설계할 때는 개발자들이 얼마나 빨리 데모를 보여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얼마나 신속하게 크고 확장가능한 시스템을 보여줄 수 있는지에 대해 신경썼다. 결국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일반적으로는 스크립팅 언어가 실제 프로그래밍 언어보다 설계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자바 설계는 자바 가상 머신(JVM)과 자바 언어 두 가지 레벨로 돼 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JVM과 그 하위 레벨이다. 자바 가상 머신을 겨냥하는 스크립팅 언어를 만들 수 있다면 두 가지 모두를 충분히 다룰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JVM에서 스크립트를 실행하고 있나?
그렇다. 모든 자바 라이브러리가 그루비 안에서 작성된 것들을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자바 애플리케이션들도 그루비를 이용할 수 있고, 그루비 스크립트릿도 통합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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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rkness님의 블로그에서 퍼 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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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이트에서 가장 빠른 소식을 보실 수 있습니다.
Cassini Homepage :
http://www.nasa.gov/mission_pages/cassini/main/index.html
http://saturn.jpl.nasa.gov/home/index.cfm
ESA Homepage :
http://www.esa.int/SPECIALS/Cassini-Huygens/index.html
Cassini관련 최신 사진들 :
http://www.nasa.gov/mission_pages/cassini/media/Cassini_Multimedia_Collection(Search_Agent)_archive_1.html

출처 : 인터넷 동아일보 2005/01/15

유럽우주국(ESA)이 제작한 탐사선 ‘호이겐스’가 14일 오후 8시 27분(한국 시간) 토성의 최대 위성인 타이탄에 착륙한다.

모선인 토성탐사선 ‘카시니’ 호에서 떨어져 나온 지 3주 만이고 지구를 출발한 지 7년 3개월 만이다.

착륙에 성공한다면 달을 제외하고 인간의 손길이 닿는 첫 태양계 위성이 된다. 토성에서 지구로 자료가 전송되는 데는 1시간 7분이 걸리기 때문에 착륙 성공 여부는 빠르면 오후 9시 40분경 알 수 있다.

ESA와 미 항공우주국(NASA)의 공동 프로젝트인 카시니와 호이겐스는 1997년 10월 15일 미 플로리다 주 케이프커내버럴 기지에서 발사됐다. 지난해 7월 토성 궤도에 진입했고 지난해 12월 25일 호이겐스가 카시니에서 떨어져 나와 타이탄을 향해 여행을 시작했다.

전원을 끈 채 시속 2만 km로 타이탄을 향하던 호이겐스는 14일 오후 1시 44분경 시한장치에 의해 재가동을 시작했다. 이후 낙하산을 단계적으로 펴 속도를 늦추며 시속 20km로 타이탄 표면에 착륙을 시도했다.

타이탄의 대기권을 통과하는 동안 호이겐스는 750장의 사진과 각종 데이터를 카시니에 전송하고 카시니는 이를 다시 지구로 보낸다.

과학자들은 약 38억 년 전 지구와 매우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타이탄 탐사를 통해 지구의 초기 모습과 진화 과정의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량의 질소와 메탄가스로 이루어진 타이탄의 대기는 원시 지구의 대기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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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기사입니다.

'실수'로 생긴 돌연변이 진화 이끌다

[한겨레 2005-01-02 18:12]



[한겨레]

40년 동안 장수한 마블 코믹스(Marvel Comics)의 베스트셀러 만화가 원작인 <엑스맨>. <엑스맨2>에서는 전편의 성공에 힘입어 다양한 돌연변이 캐릭터의 놀라운 능력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만화가 원작인 영화답게 엑스맨들의 능력은 공상과학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판타지를 보는 듯하다. 무엇이든 얼려 버리는 능력을 가진 바비, 불을 다루는 파이로, 순간 이동 능력을 가지고 있는 나이트 크롤러 등 엑스맨의 능력은 놀랍기 그지없다. 이러한 엑스맨의 능력은 그들이 돌연변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 즉, 그들이 인간과는 다른 돌연변이 종이기 때문에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돌연변이는 부모에게 없던 형질이 갑자기 나타나 유전되는 현상으로 네덜란드의 유전학자 드 브리스에 의해 알려졌다. 돌연변이는 <엑스맨>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스트레스를 받아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세포 내 디엔에이(DNA)의 복제나 재조합 과정 중에 효소의 실수에 의해 발생한다. 또한 돌연변이원인 방사선과 화학물질에 의해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는 DNA가 생각만큼 튼튼한 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DNA는 따스한 햇빛 속에 포함되어 있는 자외선에 의해서도 끊어질 만큼 결합력이 약하며, 심지어는 자신의 체열에 의해서도 손상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약한 DNA가 세대를 거듭해도 큰 변화 없이 자손에게 전달되는 것은 효소에 의한 자체 복구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메커니즘 덕분에 유전자는 100만개 당 1개 정도의 돌연변이가 발생할 정도로 정확하게 복제가 된다. 만약 이러한 시스템이 없다면 1000개의 염기마다 한 개꼴로 실수가 발생해 세상은 말 그대로 돌연변이 천지가 될 것이며, 종이라는 것이 형성될 수 없을 것이다. DNA는 정밀한 메커니즘을 통해 거의 완벽한 복제를 할 수 있지만 이렇게 사소한 실수를 함으로써 오히려 환경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돌연변이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즉 새로운 생물은 실수를 통해 창조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환경이 개체에 유리할 때는 돌연변이 발생률이 높은 것이 불리하게 작용하지만 개체의 생존에 불리할 때는 돌연변이 발생률이 높은 것이 유리하게 작용하여 진화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돌연변이가 인간 진화의 원인이 된다는 영화 속의 주장은 옳다고 할 수 있다. 돌연변이가 생겼다고 해서 엑스맨들과 같이 초능력을 발휘할 수는 없지만 높은 산에 더 잘 적응하거나 강렬한 햇빛에 잘 견딜 수는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개체에게 유리한 돌연변이가 발생할 가능성은 아주 작고, 개체에게 해롭거나 무해한 돌연변이가 대부분이다.

최원석/김천중앙고 교사 nettrek@chol.com ⓒ 한겨레(http://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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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이론'의 창시자인 서울대 이면우 교수가 쓴 글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면우 교수는 '이공계 기피 현상은 한국이 조선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라며 이공계의 현주소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교수는 글을 통해 이공계 출신자는 고시공부를 준비하고 기업에서는 교포 출신을 선호하며 대학에서는 이론교육에만 치중하고 있는 현실을 비난하고 '이공계 기피의 최종 피해자는 국민이 될 것이며 이공계의 위기는 곧 대한민국의 위기'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의 글은 월간조선 5월호에 실렸다. 이 교수의 주장에 동감한 네티즌들은 각 대학교의 게시판과 포털사이트에 이 글을 확산시켰다. 특히 '이공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겠다, 병역 혜택을 주겠다'는 정부 방침에 대해 "'침식 제공, 선불 가'라는 술집 여종업원 호객 구호가 생각난다"고 말한 이 교수의 냉소적인 비난이 네티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글을 읽은 네티즌들은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라며 진지한 반응을 보였다. '이 글을 보니 이공계에 가기 싫어졌다'고 말하는 고교생도 있었다.

'공대생'이라고 자신을 밝힌 네티즌들은 '이 글을 볼 수록 이공계를 이끌어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의지를 다지기도 하고, '기술력으로 살아야 하는 나라에서 이공계를 기피하면 어쩌자는 것인가'라며 한탄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글의 마지막에 "살고 싶으면 해결하고, 죽고 싶으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그냥 두면 된다"라고 말해 '이공계 기피현상'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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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9.02 21:55

    비밀댓글입니다

[신년특집] '가가린 우주인 훈련센터'는

[한국일보 2004-12-31 16:06]



세계에서 가장 많은 우주인을 훈련시켜 우주로 올려보낸 최고의 우주인 ‘사관학교’로 1960년 1월 11일 문을 열었다. 지금까지 영국 최초의 우주인 헬렌 샤먼 등 세계 21개국 300여명의 우주인이 이 곳을 거쳤다. 지금도 러시아인 36명과 미국인 22명, 유럽인 19명이 우주로 가기 위해 열심히 훈련 중이다. 60㏊ 규모의 시설을 유지하기 위해 투입된 인원은 군인과 과학자, 훈련 조교 등 7,000명이 넘는다.
무중력 상태 체험훈련을 위한 훈련용 비행기도 이 센터의 자랑이다. 이 비행기는 무중력 실험을 위해 대기권의 경계로 약 1시간 30분 비행하면서 28초 정도 지속되는 무중력 상태를 10~15회 가량 반복한다. 이 비행기에는 최대 20명이 탑승할 수 있으며, 독특한 경험을 원한다면 ‘스페이스 어드벤처(www.spaceadventure.com)’ 같은 우주 관련 여행사를 통해 ‘좌석’을 할당 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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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우주인 배출사업 추진위 최석식 위원장

[한국일보 2004-12-31 16:12]



‘우주에 태극기를 처음 휘날릴 사람은 누굴까.’
올해부터 한국인 우주인 후보를 선발, 2007년까지 러시아 우주선 ‘소유즈’를 통해 우주 공간에 올려보낸다는 이른바 ‘우주인 프로젝트’가 본격 추진된다. 지난해 말 구성된 우주인 배출사업 추진위원회 최석식(과학기술부 차관) 위원장에게 이 사업의 이모저모를 들었다.

_우주인 프로젝트는 무엇이며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프로젝트의 정확한 명칭은 ‘한국 최초 우주인 배출사업’이다. 우주를 비행하고 그 곳에서 과학실험을 수행,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을 높이자는 것이 주 목적이다. 사업 추진을 위해 지난해 9월 노무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때 오명 과학부총리가 러시아 우주청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그 후 우주인 배출사업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져 정부 대학 홍보 교육 등 각 분야의 전문가 12명이 참가하고 있다.

_예정대로 방송사가 이 사업을 주관하나.


“정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행정적 기술적으로 지원하는 역할만 하고, 민간 주도로 추진할 것이다. 현재 사업 주관사는 확정되지 않았다. 주관사 자격은 방송국으로 제한하지 않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으려 한다. 이 문제가 결정되는 대로 준비작업을 거쳐 우주인 선발에 들어갈 것이다. 총 260억원의 예산 중 60억원은 과기부가, 나머지는 주관사가 부담한다.”

_우주인은 어떻게 뽑나.


“우주인 선발은 모두 4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는 서류전형, 2단계는 신체검사 및 기본 교양 등을 평가하기 위한 필기시험 등이다. 3단계부터는 조금 더 까다로워진다. 우주라는 무중력 환경과 폐쇄된 공간을 극복하기 위한 정신과 신체 건강을 테스트하고 면접과 영어 인터뷰를 통해 우주인으로서의 적합성을 판단한다. 마지막으로 심층 면접과 고립실 검사를 통해 최종 후보 2~3명을 선발, 약 2년의 훈련과정을 거쳐 최종 1명을 뽑는다.”

_다른 나라 우주선에 실어 보내는 것에 대한 회의론도 있는데.


“우주인 배출 사업은 직접적인 우주 개발과는 맥락이 약간 다르다. 우주 관련 기술개발은 계속 추진하되, 우주인 배출은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한 일종의 축제로 진행될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나도 우주인이 될 수 있다’라는 희망을 주는 게 사업의 주 목적이다.”

_우리나라 우주인 1호는 어떤 사람일 것 같은가.


“우주인이라고 특별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세계 각국의 우주인은 대부분 중산층 출신의 평범한 시민이었다. 1962년 2월 ‘프렌드십 7호’를 타고 지구 궤도에 진입한 첫 번째 미국 우주인 존 글렌은 1998년 10월, 77세의 나이에 또 다시 우주 왕복선 ‘디스커버리’에 올라 노익장을 과시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민 상당수가 체력적으론 자격이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과학자, 그 중에서도 여성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특별한 가산점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현재로선 누구에게나 우주인 자격이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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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러·미·유럽서 온 77명 '가가린의 꿈' 키워

[한국일보 2004-12-31 16:16]


인류의 첫 우주인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에 몸을 싣고 지구를 한바퀴 반 돌았을 때, 니콜라이(가명)는 네 살이었다. 가가린이 살던 집과 가까웠던 덕에 그는 ‘소련의 영웅’과 종종 마주치는 영광을 누렸다. 가가린은 아빠의 손을 잡은 꼬마 니콜라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래의 우주인”이라고 말해주곤 했고 그 때마다 그는 가슴이 터질 듯 자랑스러웠다.
군인들이 입구를 겹겹이 지키고 있는 러시아 ‘우주인 훈련센터’로 안내하던 니콜라이씨는 눈 쌓인 길을 천천히 걸으며 ‘가가린의 추억’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결국 우주를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지구인을 훈련시켜 우주로 보내는 이 시설에서 20년 넘게 일하고 있는 우주인 훈련 전문가가 됐다.

전 세계 300명이 넘는 우주인을 배출한 ‘유리 가가린 우주인 훈련센터’. 모스크바 북쪽으로 키 큰 자작나무가 늘어선 시골 길을 두 시간 정도 차로 달려 도착한 ‘즈뵤즈니이 고로독(별의 도시)’에 위치해 있다. 올해 선발돼 2007년 우주로 향할 한국 최초의 우주인 역시 이 곳의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가가린 가족 살고 있는 아파트도


훈련센터에 들어서면 먼저 가가린 동상, 그리고 그 앞에 즐비하게 놓인 꽃다발이 눈에 띈다. 후배 우주인 및 방문객들이 그를 기리며 바친 것들이다. 그 뒤에 가가린의 부인과 첫째 딸이 아직 살고 있다는 우주인용 아파트가 보인다.

니콜라이씨가 가장 먼저 기자를 안내한 곳은 이제 쓸모가 없어진 옛 우주 정거장 ‘미르’의 모형이다. 15년 동안 우주 정거장 역할을 하던 미르와 똑같이 만들어 우주 공간에서 길게는 6개월씩 생활해야 하는 우주인들이 눈 감고도 원하는 장치를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실제와 다른 점은 우주에서 쓰는 태양열 판 대신 전기 코드를 꽂아 작동한다는 점, 그리고 원래는 없는 작은 출입문 하나를 달아 놓았다는 정도다.

현재 우주인 후보들은 러시아 미국 캐나다 일본 등 16개국이 공동 투자해 건설 중인 국제우주정거장(ISS) 모형에서 훈련을 한다. ISS가 만들어진 후부터 가상현실 시스템을 통해 상황과 임무에 맞는 맞춤형 훈련이 가능해졌다. 가상현실 프로그램에서는 ISS 각 부위별 이동, 우주선 장치 조립, 우주선 밖 활동 등의 시뮬레이션을 한다.

마침 ISS 모형에서 훈련을 하고 나온 우주인 두 명과 마주쳤다.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소개하자 “프랑스에서 온 우주인”이라고 반갑게 인사한다. 붉은색 패딩 점퍼와 청바지를 입은 평범한 모습이다. “훈련센터에서는 모두 우주복을 입고 있는 줄 알았다”는 말에 니콜라이씨는 “정말 어려운 훈련은 옆 건물에서 받는데 그 때는 우주복을 입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형 수조 안에서 무중력 상태 훈련


옆 건물에는 이 곳의 자랑인 ‘인공수조 훈련실’이 있다. 무중력 공간에서의 움직임에 적응하기 위한 시설이다. 1980년 1월 28일 문을 연 이 수조는 깊이 12㎙, 지름 24㎙로 건물의 네 개 층을 차지한다. 미국 존슨 우주 센터에도 비슷한 시설이 있지만, 수조 안에 있는 모듈(moduleㆍ우주선 구성 단위)을 바꿔가며 다양한 훈련을 할 수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

우주인 후보가 수조 훈련을 위해 착용하는 우주복은 등 쪽에 무거운 추를 달아 무게가 108㎏에 달한다. 옷을 입기 보다는 설치된 우주복 속으로 들어가 등에 붙은 문을 닫는 셈이다. 거대한 기중기를 이용해 수조 속에 넣어진 후 깊은 물 속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훈련을 계속한다. 지구에선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무거운 우주복을 입고 물 안에서 몇 시간씩 움직이다 보면 아무리 건강한 장정이라도 금세 녹초가 된다.

정말 어려운 훈련은 아직도 남아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원심분리기(센트리퓨즈ㆍcentrifuge)에서 우주선 발사 및 지구 진입 때의 엄청난 기압을 체험해야 한다. 이 기계의 길이는 18㎙, 둥근 방의 반지름은 24㎙에 달한다. 기계 무게는 306톤, 엔진 파워만 약 25㎿로 건물 한 동 전체를 차지한다.

최고 속도는 시속 270㎞. 탑승석의 압력은 1초에 5G씩 높아져, 우주인 후보에게 최고 30G(자기 몸무게의 30배)에 달하는 압력을 가한다. 숨쉬기 곤란한 것은 당연하고 그 안에서 기절하는 일도 다반사다.

절반 정도만 훈련 성공 후 우주로


그런데도 우주인들은 이 같은 혹독한 훈련이 ‘실제 상황’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주’라는 극한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우주인이 받아야 하는 건강검진 항목만 200가지가 넘을 정도다.

니콜라이씨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 건강”이라고 강조하며 현재 사용 중인 우주선을 훈련을 위해 복원한 ‘소유즈-TM’ 모형으로 안내한다. 동그란 모양의 이 우주선 부피는 약 8㎥. 사방이 2㎙ 정도에 불과한 작은 우주선에 세 명이 탑승한다. 일어서는 것은 물론 다리를 뻗을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주인은 卵《?한 마디 크기의 ‘특수 빵’에 의존해 ISS에 도착할 때까지, 무려 이틀 동안 어두운 공간을 꼼짝 않고 날아가야 한다.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자 니콜라이씨는 “각국에서 선발된 정예 우주인 후보들 중에도 10년 넘도록 ‘졸업’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답한다. 힘들게 이 곳까지 와서 우주인 훈련을 통과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니콜라이씨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렇다면 별 수 없죠. 지구에서 일자리를 찾아볼 수밖에….” 실제로 여기서 훈련 받는 사람 중 모든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우주로 가는 비율은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모스크바=김신영 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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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가고 싶다.
[신년특집] 민간인 출신 우주인들

[한국일보 2004-12-31 16:23]



평범한 ‘지구인’으로 살다 우주를 방문한 민간인 출신 우주인은 누가 있을까.
우선 영국 최초의 우주인 헬렌 샤먼이 꼽힌다. 그녀는 1989년 러시아 우주인 훈련센터에서 18개월 동안 훈련을 받은 후 ‘소유즈’를 타고 우주로 가 미르 우주정거장에서 8일을 보냈다. 우주인으로 선발될 당시 그녀의 나이는 28세, 직업은 전기 관련 연구소의 연구원이었다.

1987년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우연히 접한 우주인 모집 광고를 보고 응모, 1만3,000여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1호 우주인으로 선발됐다. 샤먼은 지구로 돌아온 후 영국 왕실로부터 명예기사 작위를 수여 받은 후 과학기술 홍보대사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1990년 12월 역시 ‘소유즈’를 타고 우주를 왕복한 일본 동경방송(TBS) 기자 출신 아키야마 도요히로는 정부가 아닌 민간기관이 배출한 최초의 우주인이다. 우주에 파견된 첫 기자이기도 한 그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 밖에서 생중계를 하는 기록을 세웠다.

TBS는 그를 ‘우주 특파원’으로 임명했고, 그는 8박9일간의 특파원 재임 기간 동안 매일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출연해 우주 뉴스를 생방송 했다. 당시 TBS는 회사 창립 40주년 기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우주인 배출사업을 추진했다. 총 1,000만 달러(약 104억원)가 투입된 사업비의 일부는 TBS가, 나머지는 기업이 후원했다.

최근 들어서는 세계적인 갑부들의 우주 관광이 주목을 끌었다. 91년 미국인 갑부 데니스 티토, 지난해 4월엔 남아공의 인터넷재벌 마크 셔틀워스가 250억원이 넘는 거금을 내고 ‘소유즈’에 탑승, 민간인 우주관광 시대를 예고했다.

지난해 6월 21일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하비에 본사를 둔 스케일드 콤포지츠사가 개발한 민간 우주선 ‘스페이스쉽원’이 발사돼 본격적인 민간 우주개발 시대를 열었다. 60세가 넘은 남아공 출신 조종사 마크 멜빌은 100.09㎞ 고도에 다다른 후 3분간 머물다 내려와 영웅이 됐다.

김신영 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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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日 최초 우주비행사 모리 마모루 박사

[한국일보 2004-12-31 16:25]




지난 해 ‘세계우주비행사회의’가 열렸던 일본 도쿄 오다이바의 미래과학관에 들어서면 그날의 온도와 습도에 따라 선율이 조절되는 음악이 흐른다.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은 일본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일본 최초의 우주비행사이자 미래과학관 관장인 모리 마모루(毛利衛ㆍ56) 박사에게 선물한 음악이다.
우리나라가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 배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지금, 일본은 이미 8명의 우주비행사를 배출했다. 1992년 일본 최초의 우주비행사로서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쳐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모리 박사를 오다이바 사무실로 찾아갔다. 그는 우주선을 타고 10일간 지구를 160바퀴 돌며 표면굴곡을 3차원 촬영하는데 성공, 항공기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자료를 얻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그가 기자를 안내한 일본 우주항공과학연구소(Institute of Space and Astronautical Science) 연구원에게 사인과 함께 써준 ‘우주는 창조의 공간(宇宙は 創造の 空間) ’이라는 문구는 그 자신은 물론, 일본이 가진 우주공학에 대한 사랑을 잘 보여준다. 미래과학관의 상징으로 시시각각 달 목성 지구 등으로 모양을 바꾸는 ‘지오 스페이스(Geo Spaceㆍ 직경 6.5m의 다이오드구(球) 모양)’도 그의 아이디어다.

현재 로봇 우주 등 첨단과학을 알기 쉽게 전시해놓은 일본의 대표적인 과학관 관장으로 과학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그는 진지하면서도 열정적인 자세로 자신이 경험한 우주비행의 신비와, 우주산업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1992년 일본의 첫 우주비행사로 참여했던 프로젝트는 무엇이었나.

“일본을 비롯해 미국 유럽 러시아 캐나다 등 16개국이 참여한 우주정거장 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지금도 아시아에선 일본만 참여하고 있어 아쉽다. 당시 어린 학생들을 두고 있는 학부모들이 무척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

-화학 전공자면서 우주인이 됐는데, 일반인이 우주비행사가 되는데 어려움은 없나.

“우주비행은 ‘우주여행’과 구분해야 한다. 아키야마라는 일본의 저널리스트도 우주에 다녀왔지만, 그것은 ‘우주여행’이었다. 우주여행객과 달리 우주비행사에겐 과학적ㆍ기술적 임무(mission)가 주어지므로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전문분야의 인재가 적합하다. 나는 92년에 과학자 자격으로, 2000년에는 기술자 자격으로 임무를 띠고 우주에 나갔다.”

-92년 우주에서 43개의 실험을 수행한 것으로 아는데, 대표적인 성과는.

“실리콘이 아닌 다른 원소로 반도체를 만드는 실험을 했다. ‘인듐 안티모’라는 물질이 지상에서는 반도체가 아니지만 우주에선 반도체가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우주실험을 통해 열이 적게 들고 연산속도가 빠르며 가벼운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는 뜻이다. 이 같은 ‘발전을 위한 실험’이 우주비행사에게 주어지는 임무다.”

-2000년 두 번째 우주비행의 임무는.

“92년보다 한명 적은 총 6명의 우주비행사가 함께 나갔다. NASA(미 항공우주국)의 임무를 맡아 10일간 지구를 160바퀴 돌며 지구표면의 모든 굴곡을 3차원으로 촬영했다. 마치 새의 눈처럼 60m 간격으로 떨어져 넒은 시야를 볼 수 있도록 설치된 두개의 센서 레이더를 이용, 지구 표면을 200㎞ 단위로 나누어 모두 훑어냈다. 이 임무를 통해 얻은 지구 굴곡자료 덕분에 항공기 사고가 줄어든 것으로 알고 있다.”

-상상했던 것과 막상 우주에 나갔을 때 바라본 풍경은 어떻게 다른가.

“세계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지구는 푸른 별이었다’라고 말했다. 내가 본 바로는 상상했던 푸른색, 그 이상이었다. 아주 새까만 배경에 영롱하게 빛을 발하는 ‘푸른 색’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지구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없었나.

“없었다. 수많은 시뮬레이션 훈련을 통해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우주로 올라가기 전에는 좀 떨리지만, 막상 우주선에 탑승해 각종 기기를 하나하나 점검하는데 신경을 쓰다 보면 걱정이 사라진다. 우주비행은 훈련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며, 그만큼 희생이 필요하다.”

-올해에도 우주비행 계획이 있나.

“5월께 후배 우주비행사인 도구치씨가 NASA 임무를 띠고 콜롬비아호의 타일 보수를 위해 우주 유영에 나설 것이다.”

-NASA 우주비행사 자격은 어떻게 주어지나.

“2년마다 한번씩 우주인을 모집하며, 특별한 훈련이 필요하다. 8명의 일본인 우주비행사 중 나를 포함해 4명이 자격을 획득했다.”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 선발 계획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 의의는.

“제1호 우주비행사는 그 나라의 자랑이다. 정부의 계획과 주도로 이루어지는 게 당연하다. 중국도 1호 우주인이 나와 모두들 들뜨지 않았는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빨리 한국인 우주비행사가 나와 함께 일했으면 좋겠다. 특히 한국은 액정TV 등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 분야가 있다. 그런 기술을 우주 실험을 통해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은 미국과 경쟁하기 위해 국가간 연대에 힘쓰고 있는데, 아시아의 협력 가능성은.

“내가 ‘한국우주소년단’ 명예단장인 것을 아는가?(웃음) 마음 같아서는 ‘유럽우주기구(European Space Agency)’처럼 ‘아시아우주기구(ASA)’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연구자들끼리 친분에 의한 교류는 있으나, 아시아 국가들이 함께 자금을 모아 ‘지구온난화 관측 위성’을 개발한다든가 하는 식의 체계적인 프로젝트가 없는 게 현실이다. 일단 한국이 우주정거장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학 대중화를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노벨상을 탈 만한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과학자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다음은 일반인에게 ‘최첨단 기술’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많이 알려야 한다. 일본의 우주비행사들은 중ㆍ고교와 대학원생 등을 대상으로 강의를 많이 한다. 정부에서 미래과학관을 만들어 과학의 신비와 중요성을 알리는 것도 그 일환이다.”

-다시 우주에 나가는 모습을 기대할 수 있나.

“물론이다. 우주에 나가 자율적으로 수행해보고 싶은 실험들이 가득하다.”

글 사진 도쿄=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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