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을 돌아보며(회고하며/回顧하며)

2021년 12월 31일 한해가 저물어감을 느끼며, 올 한해에 어마어마한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 결혼
  • 대학 편입 - 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 2학년 편입
  • 회사 퇴사
  • 새로운 회사 입사

살아가면서 "태어남-성장-결혼-자녀양육-죽음"등의 인생경험을 한 번쯤은 한다는데, 여기서 태어남, 성장까지만 경험한 저는 "결혼"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올 한해 동안 스트레스를 엄청 받으면서 많은 인생의 이벤트를 경험하는것도 처음인 것 같습니다. (대학 입학이나 대학원 입학등의 이벤트보다 나이 들어 대학원 졸업할때, 첫회사 퇴사할때에 소속(?)을 나올때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으나 2021년도는 어느 시기보다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결혼

2021년 5월초에 결혼을 했습니다.

원래는 2020년 1월초 중국 상하이(상해, 上海)와 항저우(항주, 杭州)에 부인이된 여자친구랑 같이 여행을 갔습니다. 부인님 친구분들도 만나고, 이제 결혼생각을 하여 2020년에 하려고 했었으나...

2020년 1월초에 중국 상하이(상해, 上海)와 항저우(항주, 杭州)에 방문할 시기에 중국 우한(무한, 武漢)에 이미 원인을 모르는 폐렴이 퍼진다는 소식을 2019년 12월 말부터 들었고, 상하이의 어느 만두집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만두집에서 우한에서 원인 모를 폐렴이 퍼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후 귀국 하고 난 3주후, 저는 원인 모를 열이 나며 몸이 안좋아져서 병원에 갔습니다.

병원에서 병의 원인을 몰라서 1주일 이상을 파악을 하지 못하다, 집 근처 새로 생긴 내과에서 제 몸의 이상 증세를 확인하였습니다.

이상증세를 확인 하여 집 근처 대형병원에 가니..... "코로나-19"가 아닌가란 의심으로, 저를 서울 중랑구에 있는 "서울의료원" 격리병상에 보내게 되었습니다.

격리병상에 하루정도에 있다, 중국 여행으로 "코로나-19"감염의심으로 인한 검사를 받았더니 다행히 바이러스인 코로나-19는 아니고 세균관련한 폐렴이라고 하여 8일 입원을 하였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회사 업무로 잦은 야근을 하다보니 걸린것이라 보니, 작년인 2020년 2월부터 전 회사에 대하여 마음이 이미 떠나버렸습니다. 

거기에 코로나-19가 퍼짐에 따라서 2020년에 결혼하려던 계획은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추가로, 제가 자산을 주식, 펀드등 위험자산위주로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대부분의 자산의 절반이상(약 50~70%까지 폭락 경험)을 잃어버리고, 부친의 사업도 코로나-19로 휘청거리는데다 임대로 상승 요구에 따라 부친이 사업을 접으며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착한 부인덕에 헤어지지 않고 잘 버티었습니다. 운이 좋게 동학개미운동(?)덕에 주식, 펀드가 원금회복에서 자산이 꽤 많이 상승하여 2020년도 1월 초에 모으던 자산보다 더 많이 모으게 되었습니다.

2020년말부터 집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시기에 전세가격이 오르며 서울, 용인, 성남을 돌아다니며 엄청나게 전세가격이 올라 결혼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다, 2021년 1월초 일요일에 집을 알아보려고 안양에 갔다, 역앞에서 나와서 있는 아파트의 부동산사무소중에 문연 곳에가서 집을 알아보면서 지금 사는 신혼집 전세 계약을 했습니다.

2021년 1월에 모았던 돈으로 전세 계약금을 넣고, 2월에 전세 잔금을 치루고 2년 계약을 찍고, 이로서, 처음으로 경기도 안양시민이 되었습니다. (어릴때 태어난 곳이 경기도 성남시였기때문에 2번째로 경기도민이 되었음)

2021년 1월에 전세 계약금넣으니, 급속하게 결혼준비를 하게되었습니다.

결혼준비를 하는데 코로나19의 전파로 인하여 스몰웨딩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친이 스몰웨딩을 반대하는 바람에 엄청나게 고생하였습니다. (부친의 사회적인 지위 - 모 고등학교 동창회장, 모 향우회 등 친구들 있는데서 활동 및 맏이 장남보다 집안 경조사를 더 챙기는 분이라 스몰웨딩하는데 매우 힘들었음) 

2021년도 들어서 회사에서 오전 8시 출근을 강요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 회사의 의사소통할때엔 출근시간이 9~10시인 경우가 있어서, 퇴근이 늦어지게 되더군요. 회사가 업무량을 올리면서 회사일에만 집중하라고 은연중에 강요를 하니 결혼 준비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회사 충성도가 확 떨어졌습니다. 

제 인생의 여러가지 난이도가 있는 이벤트중에서 결혼이 제일 난이도가 어려운것 같더군요. 

코로나19전파, 출퇴근이 용이한 집구하기 어려움, 부친의 압박(스몰웨딩 반대, 예단문제가 있었으나, 내가 어머니 발언 핑계로 무시 등등), 회사가 일의 분량을 너무 많이 주는데다 8시 출근 강요 등등으로 올해 초반에 엄청 힘들었습니다.

어튼, 온갖 난이도가 높은 허들을 넘어 2021년 5월초에 서울 가회동의 어느 한옥에서 스몰웨딩으로 결혼을 하였습니다.

결혼하는데 저나 부인님이나 모두 동지애가 생기더군요. (웬간한 관계였으면 연인이 웬수로 변하며 남남이 되는 경우가 일반적)

결혼하고 나서 이제 6개월이 넘어가나 아직까지 싸우지 않아(?) 다행인것 같습니다. 

지금은 결혼이 인생에서 제일 어려웠어요 썼지만, 이후엔 애 키우는 거가 어려웠어요? 등 시리즈가 나올지도? 

대학 편입

2020년 코로나19가 전파되며, 회사에서 회식을 거의 안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전, 전 직장이 회식을 권장하던 옛날(?)마인드를 가진 회사라 1주일에 한번씩 회식도 해보고,보통 1달에 2번 이상을 회식을 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병특끝나고 난 후에 대학 편입하여 중어중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으나, 회사의 잦은 회식때문에 거의 생각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덕에 2021년에 방송통신대학 중어중문학과 2학년편입으로 입학하였습니다.

입학하고 난 후에 회사에 대학 입학을 친한 사람 이외엔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학기 등록금 영수증을 내려고 회사에서 출력해서 은행하려니... 임원분이 그 영수증을 보았습니다. "왜 대학 다니냐" 라고 해서 취미로 다닌다고 하였습니다만, 그 분은 딴짓하는 거보다 회사일만 하라는 눈치로 말하는걸 보고... 

이런 이유로, 이미 마음서 멀어진 회사에서 퇴사를 빨리 하리라 더욱 더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1학기는 결혼 준비로 거의 공부를 안해서 기본기로 시험을 보았습니다. 운이 좋게 재수강 없이 통과할 정도로 학점을 받았습니다.

2학기때에는 1,2,3학년 과목 7과목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이직 준비하느라 공부는 벼락치기로 하여 시험을 보았습니다. 이번에도 1학기때의 경험에 따른 요령으로 재수강없이 통과하였습니다.

2022년도엔 3학년 수업을 듣는데 난이도가 올라가서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1,2학년 수업들으면서 중국어 난이도가 올라감을 체감한터라... 3학년 수업은 어떻게 넘어갈까 고민입니다. 

회사 퇴사

7년 3개월만에 회사를 퇴사하였습니다.

2020년 2월이후에 8일 입원을 하고 난 후, 급격하게 몸이 힘들어짐을 느꼈습니다. 회사일 하는 거 자체가 재미가 없어지고 왜 일을 해야하는 의문점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2021년도에 회사에 8시출근을 강요하다보니 ... 더욱더 몸이 힘들어져 결혼 준비하는데 주말엔 일찍 자도 오전에 못일어나고 오후1시되어서야 일어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어찌어찌하여 결혼을 하였으나, 회사에 퇴사자가 급속하게 늘어나며 저도 이 시류에 편승하여 퇴사를 하였습니다. 

회사가 추구하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것과  애초에 다르다보니 7년동안 참고 다녔다, 이제는 놓아줄때라고 생각하고 사표를 냈습니다.

 생일날에 퇴사를 하니 뭔가 나를 위한 선물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퇴사후에 14일 이내 퇴직연금입금을 하지 않더군요.

제가 메일로 퇴직연금 입금이 14일 이내 입금안되었다고 문의를 하니, 지연이자를 지급하고 12월 말일에 처리하겠다고 답을 받았습니다.

결국은 12월 말일에 DC형 퇴직연금에 퇴직금을 모두 적립 완료하였습니다.

퇴사할때 돈 관련으로 정리가 쉽지 않음을 이번에도 경험하였습니다. 

새로운 회사 입사

작년부터 NIPA의 한중일 관련한 사업에서 인연을 가지게 된 래블업 대표님과 같이 ODF관련한 이슈를 함께하였습니다.

이에 따른 인연으로, 한국에서 흔치 않은 파이썬(Python)을 아주 많이 활용하는 회사에 입사를 하였습니다.

아직까지 Java+Spring쪽으로 개발을 하던 사람이라보니, Python 및 새로운 도구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2021년도에 인생에서 경험하기 힘든 결혼, 퇴사, 이직을 모두 경험해보니, 어마어마한 시간이 지났다는 걸 느낍니다.

2022년도엔 좋은 일만 있길 바라며, 2021년도의 굵직굵직한 큰 경험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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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인 2015년 7월 4일, 사회생활을 한지 만 4년이 되었다. 

오늘인 토요일, 사회생활 만 4년간의 기억을 회고를 해보았다.


사회생활 만 4년을 회고하기 위하여 그동안 작성한 글을 쭉 훑어보았고, 예전 생각을 해보았다. 

 

2011년 7월 3일, 대만 타오위엔국제공항(桃園國際機場, Taiwan Taoyuan International Airport, TPE)에서 대한민국 인천국제공항(Incheon International Airport, ICN)으로 가는 중화항공 비행기에서 찍은 비행기 날개 사진.


2011년 7월 1일~2011년 7월 3일 연구실 생활을 정리하고 대만 타이페이(臺灣 台北, Taipei Taiwan)로 현실도피여행이자 첫 해외여행을 해보았다. 이후  2011년 7월 4일, 첫 회사에 입사를 했을때 생각이 난다.


4년전 대학원생활하면서 인생이 꼬인 듯한 경험을 해보았다. 

옆 연구실 박사과정들이 연구실을 빼앗기위해 후배인 나를 엄청 갈굼. 예를들면, 에어콘 리모컨을 자기들만 가지게 하고, 리모컨 없으면 작동 못하도록 손질하여, 에어콘 바람 못쐬게 하고, 날 더운 연구실에서 에어콘 못쐬게 함, 내가 천호동 산다니깐 못사는 동네라고 갈구거나 (참고로 천호동이 어쩌고 하던 그 박사과정은 삼선동에 산다고 함. 삼선동이 잘사는 부자 동네도 아니고, -_-;;)

별별 이유로 갈굼하는거에 연구실에 있는것도 껄끄럽게 되었고, 연구실에 있는 거 자체가 스트레스 받는지라 성과도 안나고 지도 교수님과 그닥 관계도 바닥이 되었음.


옆 연구실 박사과정분들에게 스트레스를 엄청 심하게 받은데다, 같이 연구하던 사람도 없고 혼자에 도와주는 사람도 없으니 연구 성과가 나올리가...  -_-;; 나의 대학원 생활은 그냥 꼬였다고 봐야지.


석사 졸업을 한학기 늦게 하고, 거기에 전문연구요원 TO도 거의 없다시피하고, 대기업 TO는 전직TO밖에 없다보니, 전직 노릴까이런 생각을 하였던 적이있다.

이때 나에게 생소한 분야인 GIS를 하는 업체에서 전문연구요원을 뽑는다고 해서 입사를 했었다. 

입사를 하고 나서 잠시나마 대전에서의 생활을 해보았다, 그리고 6개월 뒤에 나를 뽑았던 GIS개발하시던 윗분들이 대거 퇴사하고, 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


거기에 6개월동안 GIS를 실무로 많이 배우지 않고, 사수들이 도망가다보니 SI 사이트에서 삽만 푸고 기술를 배운건 거의 없다 시피하다.

제자리 걸음으로 남이 시키는대로만 일하다보니 뭐 실력이 늘리가 있나? 거의 정치만 배운것 같다. 


생각해보니, 뻔뻔하게 자리 잡는 방법, 갑을관계의 정치, 제안서 잘 써서 잘 보이기, 파견가서 갑질에서 살아남기 정도?


SI업을 하다보니 원청 회사직원도 고달프다는 것을 느꼈고, 원청 회사 직원분 보니깐 대기업에 대한 환상도 많이 깨졌음. 갑질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 위에서 원가절감등을 시키니깐 자연스럽게 갑질을 배우게 되는 것도 지켜보았음.

이걸로 SI업을 하는 대기업으로 취업하는걸 하기가 싫어졌음.


2012년도에 사수분이 갑작스레 지병으로 사망하였으나, 갑회사 발주 프로젝트 마감때문에 프로젝트 하던 곳 근처서 장례식하는 것도 못보고 떠나던 기억도 나고. 


그리고 2014년 초반 프로젝트 도중,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중간급 간부분들이 퇴사하여 프로젝트하면서 받을 돈 못받고, 갑 회사 직원에게 욕 엄청 먹고, 이 바닥에서 발 못들이게 하겠다는 협박도 받음. 그리고 프로젝트 수주 받은 을 회사 직원들에게 당연 협박도 받아보고, 그리고 회유("너네회사 돈 없다면서, 돈 줄테니깐 프로젝트 마무리나 해라") , 


을회사가 나를 상거지도 아닌데 노예취급, 거지 취급이나 받고, 첫 직장이 입사후부터 쭉 막장으로 치달아 인력관리도 막장수준으로 변하고 월급도 체불되고, 결국 일할 마음이 사라지고 그냥 쉬고 싶었다.  


월급 체불되고 수주가 안되어, 회사에서 할일이 없어 놀때(내부 프로젝트는 진행하나 대충대충 하고 퇴근후 공부만 함), 원래 정보관리기술사 자격증 취득 하고프나, 내가 기술사 자격증 취득할수 있을지 한번 테스트해보고자 CISA 공부를 했는데, 공부한 결과 CISA자격을 얻어서 기분이 좋았고 (이때 실패한 인생이 보상되는 느낌이 듦.) 

  

건설회사같이 돌아가는 SI회사의 갑을병정 하도급에 질렸고, 평생 을,병,정 질만 하다 퇴물이 될것 같은 생각에 회사를 그만 두고 서비스업을 하는 회사로 이직을 하였다.


코딩으로 실력이 늘지 않고 정치와 스트레스만 들고 병을 얻은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할때 첫회사의 뼈아픈 기억이 난다.


회사가 휘청휘청거리가 맛가는 타이밍이 어떤 때인지도 알고, 회사가 망할때엔 핵심인력이 제일 먼저 나간다는 것도 지켜보았다. 

아버지가 예전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회사에서 일하다 임금 체불되고, 회사가 망하는 과정을 경험한걸 아들인 나도 직접 경험해보니, 아버지의 스트레스를 알게 되었음.

그래도 다행인건 나는 젊을때에 망함을 경험해보았으니 망하지 않는 회사가 어떤 것인지를 일찍 깨달았다는 것? 

 

이직 준비할때엔 IT가 주가 되는 회사로 이직하기 위하여, 주로 IT가 주가되는 회사로 이력서를 제출해봄. 대전에 있는 여러 연구소쪽도 지원해보고 대기업도 지원해보고 별별 경험을 해보았음. 

첫회사에서 사직서를 제출하고 이직하기전, 전문연구요원 복무 끝나고 바로 도피성으로 일본 도쿄 여행을 해보았던 기억도.


2014년 8월 24일 일요일-2014년 8월 27일 수요일간 일본 도쿄(東京), 에노시마(江ノ島), 가마쿠라(鎌倉) 여행. 가마쿠라의 대불 앞에서 찍은 사진. 2014년 8월24일부터 전문연구요원복무만료로 민간인이 되었습니다. 24일 아침 8시비행기로 김포국제공항으로 출국할때 공항 출국심사 직원에게 "저 민간인 맞아요?"하고 물었던 게 생각났음

 


그 다음으로 들어간 회사는 회사가 급 성장하여 코스닥 상장도 하였고 (드디어 나도 코스닥 상장사 직원), 열심히 하면 성과가 나오니 일로만 스트레스받아서 나름 괜찮음. 

그리고 첫 회사에서 잘못 배웠던 습관때문에 많이 혼나고, 코딩으로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것을 느꼈다. 서비스 하는 회사에 일하다보니 나의 코딩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사고 없는 무중단 개발 및 운영에 대하여 많이 배우고 있음.


여기서는 회사도 성장하고 나도 성장하는 걸 느껴서 기분이 좋음을 느낌. 그리고 SI막장 생활을 마치고 서비스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최고의 개발자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음.


사회생활을 한지 만 4년, 5년차. 아직도 부족하다는 걸 많이 느낀다. 앞으로도 크게 성장하도록 노력하겠고, 회사를 크게 키우도록 노력을 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에게 만족을 주기 위하여 노력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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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인 2015년 7월 4일, 사회생활을 한지 만 4년이 되었다. 

오늘인 토요일, 사회생활 4년간의 기억을 회고를 해보았다.

 

2011년 7월 3일, 대만 타오위엔국제공항(桃園國際機場, Taiwan Taoyuan International Airport, TPE)에서 대한민국 인천국제공항(Incheon International Airport, ICN)으로 가는 중화항공 비행기에서 찍은 비행기 날개 사진.


2011년 7월 1일~2011년 7월 3일 연구실 생활을 정리하고 대만 타이페이(臺灣 台北, Taipei Taiwan)로 현실도피여행이자 첫 해외여행을 해보았다. 이후  2011년 7월 4일, 첫 회사에 입사를 했을때 생각이 난다.


4년전 대학원생활하면서 인생이 꼬인 듯한 경험을 해보았다. 

옆 연구실 박사과정들이 연구실을 빼앗기위해 후배인 나를 엄청 갈굼. 예를들면, 에어콘 리모컨을 자기들만 가지게 하고, 리모컨 없으면 작동 못하도록 손질하여, 에어콘 바람 못쐬게 하고, 날 더운 연구실에서 에어콘 못쐬게 함, 내가 천호동 산다니깐 못사는 동네라고 갈구거나 (참고로 천호동이 어쩌고 하던 그 박사과정은 삼선동에 산다고 함. 삼선동이 잘사는 부자 동네도 아니고, -_-;;)

별별 이유로 갈굼하는거에 연구실에 있는것도 껄끄럽게 되었고, 연구실에 있는 거 자체가 스트레스 받는지라 성과도 안나고 지도 교수님과 그닥 관계도 바닥이 되었음.


옆 연구실 박사과정분들에게 스트레스를 엄청 심하게 받은데다, 같이 연구하던 사람도 없고 혼자에 도와주는 사람도 없으니 연구 성과가 나올리가...  -_-;; 나의 대학원 생활은 그냥 꼬였다고 봐야지.


석사 졸업을 한학기 늦게 하고, 거기에 전문연구요원 TO도 거의 없다시피하고, 대기업 TO는 전직TO밖에 없다보니, 전직 노릴까이런 생각을 하였던 적이있다.

이때 나에게 생소한 분야인 GIS를 하는 업체에서 전문연구요원을 뽑는다고 해서 입사를 했었다. 

입사를 하고 나서 잠시나마 대전에서의 생활을 해보았다, 그리고 6개월 뒤에 나를 뽑았던 GIS개발하시던 윗분들이 대거 퇴사하고, 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


거기에 6개월동안 GIS를 실무로 많이 배우지 않고, 사수들이 도망가다보니 SI 사이트에서 거 삽만 푸고 기술를 배운건 거의 없다 시피하다.


생각해보니, 뻔뻔하게 자리 잡는 방법, 갑을관계의 정치, 제안서 잘 써서 잘 보이기, 파견가서 갑질에서 살아남기 정도?


SI업을 하다보니 원청 회사직원도 고달프다는 것을 느꼈고, 원청 회사 직원분 보니깐 대기업에 대한 환상도 많이 깨졌음. 갑질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 위에서 원가절감등을 시키니깐 자연스럽게 갑질을 배우게 되는 것도 지켜보았음.


2012년도에 사수분이 갑작스레 지병으로 사망하였으나, 갑회사 발주 프로젝트 마감때문에 프로젝트 하던 곳 근처서 장례식하는 것도 못보고 떠나던 기억도 나고. 


그리고 2014년 초반 프로젝트 도중,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중간급 간부분들이 퇴사하여 프로젝트하면서 받을 돈 못받고, 갑 회사 직원에게 욕 엄청 먹고, 이 바닥에서 발 못들이게 하겠다는 협박도 받음. 그리고 프로젝트 수주 받은 을 회사 직원들에게 당연 협박도 받아보고, 그리고 회유("너네회사 돈 없다면서, 돈 줄테니깐 프로젝트 마무리나 해라") , 


을회사가 나를 상거지도 아닌데 노예취급, 거지 취급이나 받고, 첫 직장이 입사후부터 쭉 막장으로 치달아 인력관리도 막장수준으로 변하고 월급도 체불되고, 결국 일할 마음이 사라지고 그냥 쉬고 싶었다.  


월급 체불되고 수주가 안되어, 회사에서 할일이 없어 놀때(내부 프로젝트는 진행하나 대충대충 하고 퇴근후 공부만 함), 원래 정보관리기술사 자격증 취득 하고프나, 내가 기술사 자격증 취득할수 있을지 한번 테스트해보고자 CISA 공부를 했는데, 공부한 결과 CISA자격을 얻어서 기분이 좋았고 (이때 실패한 인생이 보상되는 느낌이 듦.) 

  

건설회사같이 돌아가는 SI회사의 갑을병정 하도급에 질렸고, 평생 을,병,정 질만 하다 퇴물이 될것 같은 생각에 회사를 그만 두고 서비스업을 하는 회사로 이직을 하였다.


코딩으로 실력이 늘지 않고 정치와 스트레스만 들고 병을 얻은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할때 첫회사의 뼈아픈 기억이 난다.


회사가 휘청휘청거리가 맛가는 타이밍이 어떤 때인지도 알고, 회사가 망할때엔 핵심인력이 제일 먼저 나간다는 것도 지켜보았다. 

아버지가 예전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회사에서 일하다 임금 체불되고, 회사가 망하는 과정을 경험한걸 아들인 나도 직접 경험해보니, 아버지의 스트레스를 알게 되었음.

그래도 다행인건 나는 젊을때에 망함을 경험해보았으니 망하지 않는 회사가 어떤 것인지를 일찍 깨달았다는 것? 

 


첫회사에서 사직서를 제출하고 이직하기전, 전문연구요원 복무 끝나고 바로 도피성으로 일본 도쿄 여행을 해보았던 기억도.


2014년 8월 24일 일요일-2014년 8월 27일 수요일간 일본 도쿄(東京), 에노시마(江ノ島), 가마쿠라(鎌倉) 여행. 가마쿠라의 대불 앞에서 찍은 사진. 2014년 8월24일부터 전문연구요원복무만료로 민간인이 되었습니다. 24일 아침 8시비행기로 김포국제공항으로 출국할때 공항 출국심사 직원에게 "저 민간인 맞아요?"하고 물었던 게 생각났음

 


그 다음으로 들어간 회사는 회사가 급 성장하여 코스닥 상장도 하였고 (드디어 나도 코스닥 상장사 직원), 열심히 하면 성과가 나오니 일로만 스트레스받아서 나름 괜찮음. 

그리고 첫 회사에서 잘못 배웠던 습관때문에 많이 혼나고, 코딩으로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것을 느꼈다. 서비스 하는 회사에 일하다보니 나의 코딩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사고 없는 무중단 개발 및 운영에 대하여 많이 배우고 있음.


여기서는 회사도 성장하고 나도 성장하는 걸 느껴서 기분이 좋음을 느낌. 그리고 SI막장 생활을 마치고 서비스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최고의 개발자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음.


사회생활을 한지 만 4년, 5년차. 아직도 부족하다는 걸 많이 느낀다. 앞으로도 크게 성장하도록 노력하겠고, 회사를 크게 키우도록 노력을 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에게 만족을 주기 위하여 노력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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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일. 벌써 2014년도 끝나감을 느껴본다.
12월 첫 날에 1월부터 지금까지 나의 삶을 잠시금 정리를 해보았다..
29살로서 아홉수가 어떤것인지를 제대로 체험하였고, 2013년도 광주광역시에 사는 한의사친구가 본 사주풀이( http://blog.studioego.info/m/post/3553 )의 결과대로 "9"에서 인생이 완전 바뀜을 경험하였다.
인생이 롤러코스터같이 최저에 있다 최고에 있다 등등 널뛰기를 경험하였으니 이제 내년부터 안정을 찾아 좋은 일이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1월부터 3월초까지 미친 갑회사와 내분이 일어난 을회사때문에 뒷감당하는 병회사 직원으로서 월화 수목금금금 생활에 주말에도 출근하다보니 몸에 병이났음. 그리고는 내과다니면서 회사 다니다 광주광역시에서 한의원하는 한의사친구에게 침맞고, 이후 한약먹고 회사 다님.
올해초부터 퇴직전까지 전 직장에서 심각하게 안좋은 일을 겪었다.
5월잘에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제4이동통신 선정 실패"소식을 듣고는 전문연구요원이 끝나는 마당에 비젼이 안보이는 회사에 남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여 새로운 회사를 찾기 위해 서울시내와 대전까지 돌아다녔다.
회사생활을 하며 운좋게 CISA시험을 합격하고 정보시스템감사자격을 얻었다.
8월말 전 직장에서 전문연구요원을 마치고는 마음을 추스리고자 일본 도쿄(東京) 여행을 떠나보았다. 여기서 도쿄에 거주하시는 겜기옹에게 점시 신세를 졌음.
옮길 회사가 결정되자 바로 퇴사. 그리고 난 민간인이 됨에 동시에 며칠간 백수생활도 해보았다.
새로 옮긴 회사에서는 나를 좋게보고 제대로 대접받으니 다행이랄까? IPO실사중이고 계속 직원을 충원하는 커가는 회사에 들어가니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회사 옮기고는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자 그동안 앓던 소화불량을 치료할 목적으로 휘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시작. 매일 꾸준히 운동하며 몸이 정상적으로 변함을 느낌. 이제 사람같아진다는 소리를 들음.
11월초에 사고로 병원다니며 손해사정사와 보험처리하고 치료완료하고 사고난 곳과 합의서쓰고 나니 11월도 끝. 치료는 끝나고 보상 받을 예정 -_-;;
이제 심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든 일을 다 겪어보니 이제 안정을 찾고 싶다.

올해인 2014년도에 남들이 쉽게 겪지 못할 일을 1년동안 경험해보니, 웬간한 일에 놀라고 흥분하지 않을듯 하다.

글을 쓰다보니 남은 2014년 12월달에는 좋은 일만 있길 기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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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31일 일요일.

이제 3박4일간 일본 도쿄(東京), 에노시마(江ノ島), 가마쿠라(鎌倉) 여행을 다녔고 , 회사 이직도 확정되었으며, CISA(Certified Information Systems Auditor)시험 합격되었지 등등 작년과 다르게 올해에는 생각하던 목표들이 마구 이뤄지고 있으니 계획대로 되더군요.


작년에 친구에게 사주를 보며 9에서 인생이 많이 바뀐다며, 그때 솥의 물이 끓듯, 원하는 일이 이뤄진다고 하였습니다.
올해인 2014년, 한국나이로 29살인 저는 올해에 많은 일들을 겪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아홉수라는 말이 무색할민큼 원하는 일이 잘되니깐 뭔가 두렵기도 하군요.
이제 계란 한판이 될텐데 계란한판 되기전에 원하는 대로 일이 이뤄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하였던 현 회사에서 9월초면 퇴사하게 되니 좋게 마무리하였으면 하구요.

8월 말 이제 여름도 다 갔으며, 가을이 다가오군요. 앞으로도 여러분들이나 저나 모두 일이 잘풀렸으면 합니다.


2014년 8월 26일 가마쿠라(鎌倉)의 고도쿠인(高徳院) 대불(大仏)앞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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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새해가 온 뒤 결심을 하였습니다.

영어 성적 올리기, Sakai Project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기. JAVA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게, JAVA Script Framework인 Prototype, Script.aculo.us, DOJO, 등등에 대해 꿰뚫고, 운전면허를 딴다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1월 2일에는 연구실 청소를 했으며, 3일에는 연간 계획을 어떻게 잡을지에 대해 계획을 세웠으며 4일에는 오래간만에 집에서 푹쉬면서 오래간만에 PHP코딩을 해보았답니다.

5일에는 연구실 컴퓨터 작업 셋팅을 하였고, 6일에는 운전면허학원에 가서 학원 등록을 하였습니다. 학원 등록하는데에 필기는 알아서 따라고 해서 당황했지만요 ^^ (필기는 벼락치기로 합격했습니다 후후)

7일에는 회사노트북을 집에 놓고 회사 갔다는 아부지때문에 오목교역에 있는 목동 KT IDC까지 가보았고 학교에 가서 어떻게 대학원갈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8일엔 나태하게 보내고, 9일에는 운전면허학원에서 안전교육 받고 학교서 공부하였지요.

10일에는 강남 삼성동에 있는 강남운전면허시험장에 접수를 하였고, 11일엔 대구 내려가서 사촌누님 결혼식장에 갔습니다. 왕복 6시간을 버스에서 있다보니 거의 잠만 잤군요.

12일엔 주행연습 시작하고, 운전면허 시험 합격. 그리고 학교에서 9시까지 공부하였지요,

13일도 주행연습. 너무 피곤해서 집에서 바로 뻗었음.

이렇게 회고를 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느낌이 들긴 하네요. 운전면허학원이 남양주에 있다보니 집에서 학원까지 대략 40분 걸리는 것 같고, 학원에서 학교까지 가는데 대략 2시간 정도 걸리니 교통수단에서 시간을 많이 뺐기는 것 같습니다. 계속 운전면허에만 투자하여서 정작 필요한 공부는 안해서 걱정이 되군요. 설날 전까지는 어느정도 교수님께 보고할 보고서 정도는 정리를 해야하는데 말이죠.

이러다 작심삼일식으로 생활할까봐 걱정되군요.


애자일 회고
카테고리 컴퓨터/IT
지은이 에스더 더비 (인사이트,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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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자일 회고에서 보면 회고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던데, 이 책의 예를 따라서 회고하는 습관을 가져야겠습니다. 계속 운전면허만 붙잡는 생활은 이번 주까지만 일겁니다. 이번주만 지나면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을려나?

그리고 회고를 하면서 1월 말경엔 규칙적으로 일어나서 JAVA Framework책을 독파하는 것을 꼭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버렸답니다. ㅎㅎ 대학원 입학전에 빨리 논문 쓸 준비를 하고 싶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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