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네티앙 폐쇄, 또다시 '접속 불통'...최악국면
네띠앙이 없어지구나. 90년대 말에는 홈페이지를 만들수 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많이 썼던데 시대가 지나 인터넷 사용자에게 적응을 못해서 몰락하는 회사가 되었구나.
네띠앙 하다가 옛날 생각이 나버렸다.
KT 자회사다니는 아부지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때 테헤란로에 있는 회사건물에 간 적이 있었다.(그러니까 1995년 5월경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인터넷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넷스케이프 브라우저를 누루고 나니 신기한 것이 나타났다.
그때 인상 깊었던 것이 N이라는 마크에서 별똥별이 날라다니는 이미지였다.
아부지가 아주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셨다. 공룡에 대한 자료인데 NASA에서 가져온 것이였다.
나는 그때 엄청난 정신적인 충격을 얻은 것 같다. 이때 나의 꿈은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이다."였다.
그 당시의 꿈은 YAHOO의 제리 양이 되는 것이 꿈이였다.
지금의 꿈도 프로그래머가 되는 꿈이다. 그러나 단순히 위에서 시켜서 프로그램을 짜는 Coder가 아닌 진정한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이 꿈이다.
좀 있으니까 조선일보에서 키드넷이라고 인터넷 쓰기 운동을 벌이고 있었고 그리고 나서 주위 사람들이 홈페이지 갖는 것이 인기였다.
아부지 아이디를 빌려썼던 하이텔에서는 정말 계속 인터넷에 대한 찬양이 있달았고, PC통신 시장에서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이 있었다.
(지금은 하이텔은 KT하이텔로 상호 변경하고 PC통신 서비스 중단, Paran 포탈 사이트를 운영, 천리안은 데이콤이 LG로 넘어감에 LG가 운영을 할 것이다. 나우누리는 PDBOX라는 파일공유서비스로 먹고 살고 있고, 삼성 SDS에서 운영하던 유니텔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지금도 PC통신 서비스 하는 곳이 있을까? 그때 모뎀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땐 아직도 ADSL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지도 못하였고 KT에서는 ISDN이라는 차세대 통신망을 선전을 할 때였다 (최대가 128kbps였으니까... 그당시에는 모뎀 최대 속도가 56.4Kbps이니까 2배 빨랐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나 6학년이었나? 그때 네띠앙에서 처음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사람들이 네띠앙이 무료계정이라고 해서 네띠앙에 가입을 하고나서 홈페이지를 만들엇다.
그때 HTML의 태그를 몰라서 아부지에게 HTML책을 사달라고 졸라서 예쁘게 프래임을 2개로 해서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홈페이지는 중학교때 까지 운영을 하다가 거의 내팽겨쳐 버렸지만.
네띠앙 하면 어릴때의 향수를 불러들이기에 충분 했었는데 ..
시간의 흐름은 변할 수가 없는가? 적응을 못해서 살아남지 못하는 회사는 금방 도태된다는 것을 지금 똑똑히 시켜보고 있다.
초등학교때의 기억들이 싹 사라지는 것을 보니, 빨리 다른 계정에 남아있는(하이텔)것들을 빨리 다른 계정으로 옮길까 그런 걱정을 해본다 (KTH는 KT자회사니 그럴게 빨리 망할 수도 없는데.-_-;;)
네띠앙이 없어지구나. 90년대 말에는 홈페이지를 만들수 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많이 썼던데 시대가 지나 인터넷 사용자에게 적응을 못해서 몰락하는 회사가 되었구나.
네띠앙 하다가 옛날 생각이 나버렸다.
KT 자회사다니는 아부지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때 테헤란로에 있는 회사건물에 간 적이 있었다.(그러니까 1995년 5월경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인터넷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넷스케이프 브라우저를 누루고 나니 신기한 것이 나타났다.
그때 인상 깊었던 것이 N이라는 마크에서 별똥별이 날라다니는 이미지였다.
그림들은 여기에 참조를 했다. Netscape - design of killer application넷스케이프라는 브라우저에서 별동별이 날아다니는 애니메이션그 때 처음으로 본 넷스케이프 띄울때 화면마지막으로 컴퓨터에 설치한 넷스케이프 띄울때 화면. 그 이후로 넷스케이프는 M$사와의 브라우져 전쟁에 져서 사람들은 웹 브라우져는 Internet Explorer를 쓰게 되었다. de facto standard(사실상의 표준)이 되었다.
아부지가 아주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셨다. 공룡에 대한 자료인데 NASA에서 가져온 것이였다.
나는 그때 엄청난 정신적인 충격을 얻은 것 같다. 이때 나의 꿈은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이다."였다.
그 당시의 꿈은 YAHOO의 제리 양이 되는 것이 꿈이였다.
지금의 꿈도 프로그래머가 되는 꿈이다. 그러나 단순히 위에서 시켜서 프로그램을 짜는 Coder가 아닌 진정한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이 꿈이다.
좀 있으니까 조선일보에서 키드넷이라고 인터넷 쓰기 운동을 벌이고 있었고 그리고 나서 주위 사람들이 홈페이지 갖는 것이 인기였다.
아부지 아이디를 빌려썼던 하이텔에서는 정말 계속 인터넷에 대한 찬양이 있달았고, PC통신 시장에서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이 있었다.
(지금은 하이텔은 KT하이텔로 상호 변경하고 PC통신 서비스 중단, Paran 포탈 사이트를 운영, 천리안은 데이콤이 LG로 넘어감에 LG가 운영을 할 것이다. 나우누리는 PDBOX라는 파일공유서비스로 먹고 살고 있고, 삼성 SDS에서 운영하던 유니텔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지금도 PC통신 서비스 하는 곳이 있을까? 그때 모뎀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땐 아직도 ADSL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지도 못하였고 KT에서는 ISDN이라는 차세대 통신망을 선전을 할 때였다 (최대가 128kbps였으니까... 그당시에는 모뎀 최대 속도가 56.4Kbps이니까 2배 빨랐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나 6학년이었나? 그때 네띠앙에서 처음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사람들이 네띠앙이 무료계정이라고 해서 네띠앙에 가입을 하고나서 홈페이지를 만들엇다.
그때 HTML의 태그를 몰라서 아부지에게 HTML책을 사달라고 졸라서 예쁘게 프래임을 2개로 해서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홈페이지는 중학교때 까지 운영을 하다가 거의 내팽겨쳐 버렸지만.
네띠앙 하면 어릴때의 향수를 불러들이기에 충분 했었는데 ..
시간의 흐름은 변할 수가 없는가? 적응을 못해서 살아남지 못하는 회사는 금방 도태된다는 것을 지금 똑똑히 시켜보고 있다.
초등학교때의 기억들이 싹 사라지는 것을 보니, 빨리 다른 계정에 남아있는(하이텔)것들을 빨리 다른 계정으로 옮길까 그런 걱정을 해본다 (KTH는 KT자회사니 그럴게 빨리 망할 수도 없는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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