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때, 모리마모루(毛利衛)박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과학동아에서 주최한 강연회에 들어가 모리 마모루박사의 강연회를 봤었는데, 그것이 2003년 5월 과학동아에 특집으로 실렸습니다. 2003년 5월 과학동아에 강연회 사진을 찍어났는데, 저도 찍혔습니다.(조그만하게 찍혔지오.)

2005년 1월 1일 조선일보 새해 특집기사 기사원문보기





92년 우주왕복선 탑승 日 첫 우주인 모리박사

[조선일보 이영완 기자]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선발하는 게 좋을 겁니다.”


일본 정부가 선발한 첫 우주인인 모리 마모루(毛利衛·57) 박사는 본지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남녀 한 명씩 뽑든지 한 명은 과학자, 한 명은 공학자와 같이 상반된 사람을 선발하면 서로 배울 수 있고 신선한 관점을 얻을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현재 일본 과학미래관 관장으로 있는 모리 박사는 1992년 일본인 최초로 미국의 우주왕복선에 탑승했고, 2000년 두 번째 우주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일본의 국민적인 과학영웅이 됐다.


모리 박사는 “2년 가까이 걸린 선발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인내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1983년 일본이 미항공우주국(NASA)의 국제우주정거장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우주에서 실험할 과학자를 모집했을 때 35세의 나이로 지원했다. 첫 선발단계에서 533명 가운데 64명이 뽑혔고, 다시 32명, 12명, 7명으로 좁혀졌다. 이 7명이 NASA로 보내져 심리학자들과 과학자들의 인터뷰를 받고 최종적으로 3명이 우주인으로 선발됐다.


선발과정에는 바늘을 작은 구멍에 집어넣는 시험도 있었는데 만약 조금이라도 바늘이 구멍에 닿으면 바로 탈락이었다고 한다. 모리 박사는 “우주인에 응모한 사람들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도 조용히 인내하고 답이나 해결책을 찾는 데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최종 선발된 3명의 우주인 중 가장 연장자였다. 그러나 3명 중 유일한 자연과학자여서 과학실험을 수행하는 데 적격이라고 인정받아 44세의 나이에 우주왕복선을 타게 됐다.


모리 박사는 13세이던 1961년 옛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우주인이 되겠다는 꿈을 꿨다고 한다. 그래서 무엇보다 어린 시절의 꿈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죠. 어린이들에게도 실수 자체는 나쁘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 배울 수 있을 때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가르치는 일이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이 지금 일본에 비해 우주개발에서 30년 정도 뒤졌다지만 일본 역시 과거 그런 상황에 있었습니다. 꿈꾸는 사람들만이 우주에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영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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