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러·미·유럽서 온 77명 '가가린의 꿈' 키워
[한국일보 2004-12-31 16:16]
인류의 첫 우주인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에 몸을 싣고 지구를 한바퀴 반 돌았을 때, 니콜라이(가명)는 네 살이었다. 가가린이 살던 집과 가까웠던 덕에 그는 ‘소련의 영웅’과 종종 마주치는 영광을 누렸다. 가가린은 아빠의 손을 잡은 꼬마 니콜라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래의 우주인”이라고 말해주곤 했고 그 때마다 그는 가슴이 터질 듯 자랑스러웠다.
군인들이 입구를 겹겹이 지키고 있는 러시아 ‘우주인 훈련센터’로 안내하던 니콜라이씨는 눈 쌓인 길을 천천히 걸으며 ‘가가린의 추억’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결국 우주를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지구인을 훈련시켜 우주로 보내는 이 시설에서 20년 넘게 일하고 있는 우주인 훈련 전문가가 됐다.
전 세계 300명이 넘는 우주인을 배출한 ‘유리 가가린 우주인 훈련센터’. 모스크바 북쪽으로 키 큰 자작나무가 늘어선 시골 길을 두 시간 정도 차로 달려 도착한 ‘즈뵤즈니이 고로독(별의 도시)’에 위치해 있다. 올해 선발돼 2007년 우주로 향할 한국 최초의 우주인 역시 이 곳의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가가린 가족 살고 있는 아파트도
훈련센터에 들어서면 먼저 가가린 동상, 그리고 그 앞에 즐비하게 놓인 꽃다발이 눈에 띈다. 후배 우주인 및 방문객들이 그를 기리며 바친 것들이다. 그 뒤에 가가린의 부인과 첫째 딸이 아직 살고 있다는 우주인용 아파트가 보인다.
니콜라이씨가 가장 먼저 기자를 안내한 곳은 이제 쓸모가 없어진 옛 우주 정거장 ‘미르’의 모형이다. 15년 동안 우주 정거장 역할을 하던 미르와 똑같이 만들어 우주 공간에서 길게는 6개월씩 생활해야 하는 우주인들이 눈 감고도 원하는 장치를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실제와 다른 점은 우주에서 쓰는 태양열 판 대신 전기 코드를 꽂아 작동한다는 점, 그리고 원래는 없는 작은 출입문 하나를 달아 놓았다는 정도다.
현재 우주인 후보들은 러시아 미국 캐나다 일본 등 16개국이 공동 투자해 건설 중인 국제우주정거장(ISS) 모형에서 훈련을 한다. ISS가 만들어진 후부터 가상현실 시스템을 통해 상황과 임무에 맞는 맞춤형 훈련이 가능해졌다. 가상현실 프로그램에서는 ISS 각 부위별 이동, 우주선 장치 조립, 우주선 밖 활동 등의 시뮬레이션을 한다.
마침 ISS 모형에서 훈련을 하고 나온 우주인 두 명과 마주쳤다.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소개하자 “프랑스에서 온 우주인”이라고 반갑게 인사한다. 붉은색 패딩 점퍼와 청바지를 입은 평범한 모습이다. “훈련센터에서는 모두 우주복을 입고 있는 줄 알았다”는 말에 니콜라이씨는 “정말 어려운 훈련은 옆 건물에서 받는데 그 때는 우주복을 입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형 수조 안에서 무중력 상태 훈련
옆 건물에는 이 곳의 자랑인 ‘인공수조 훈련실’이 있다. 무중력 공간에서의 움직임에 적응하기 위한 시설이다. 1980년 1월 28일 문을 연 이 수조는 깊이 12㎙, 지름 24㎙로 건물의 네 개 층을 차지한다. 미국 존슨 우주 센터에도 비슷한 시설이 있지만, 수조 안에 있는 모듈(moduleㆍ우주선 구성 단위)을 바꿔가며 다양한 훈련을 할 수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
우주인 후보가 수조 훈련을 위해 착용하는 우주복은 등 쪽에 무거운 추를 달아 무게가 108㎏에 달한다. 옷을 입기 보다는 설치된 우주복 속으로 들어가 등에 붙은 문을 닫는 셈이다. 거대한 기중기를 이용해 수조 속에 넣어진 후 깊은 물 속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훈련을 계속한다. 지구에선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무거운 우주복을 입고 물 안에서 몇 시간씩 움직이다 보면 아무리 건강한 장정이라도 금세 녹초가 된다.
정말 어려운 훈련은 아직도 남아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원심분리기(센트리퓨즈ㆍcentrifuge)에서 우주선 발사 및 지구 진입 때의 엄청난 기압을 체험해야 한다. 이 기계의 길이는 18㎙, 둥근 방의 반지름은 24㎙에 달한다. 기계 무게는 306톤, 엔진 파워만 약 25㎿로 건물 한 동 전체를 차지한다.
최고 속도는 시속 270㎞. 탑승석의 압력은 1초에 5G씩 높아져, 우주인 후보에게 최고 30G(자기 몸무게의 30배)에 달하는 압력을 가한다. 숨쉬기 곤란한 것은 당연하고 그 안에서 기절하는 일도 다반사다.
절반 정도만 훈련 성공 후 우주로
그런데도 우주인들은 이 같은 혹독한 훈련이 ‘실제 상황’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주’라는 극한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우주인이 받아야 하는 건강검진 항목만 200가지가 넘을 정도다.
니콜라이씨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 건강”이라고 강조하며 현재 사용 중인 우주선을 훈련을 위해 복원한 ‘소유즈-TM’ 모형으로 안내한다. 동그란 모양의 이 우주선 부피는 약 8㎥. 사방이 2㎙ 정도에 불과한 작은 우주선에 세 명이 탑승한다. 일어서는 것은 물론 다리를 뻗을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주인은 卵《?한 마디 크기의 ‘특수 빵’에 의존해 ISS에 도착할 때까지, 무려 이틀 동안 어두운 공간을 꼼짝 않고 날아가야 한다.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자 니콜라이씨는 “각국에서 선발된 정예 우주인 후보들 중에도 10년 넘도록 ‘졸업’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답한다. 힘들게 이 곳까지 와서 우주인 훈련을 통과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니콜라이씨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렇다면 별 수 없죠. 지구에서 일자리를 찾아볼 수밖에….” 실제로 여기서 훈련 받는 사람 중 모든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우주로 가는 비율은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모스크바=김신영 기자 ddalgi@hk.co.kr
[한국일보 2004-12-31 16:16]
인류의 첫 우주인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에 몸을 싣고 지구를 한바퀴 반 돌았을 때, 니콜라이(가명)는 네 살이었다. 가가린이 살던 집과 가까웠던 덕에 그는 ‘소련의 영웅’과 종종 마주치는 영광을 누렸다. 가가린은 아빠의 손을 잡은 꼬마 니콜라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래의 우주인”이라고 말해주곤 했고 그 때마다 그는 가슴이 터질 듯 자랑스러웠다.
군인들이 입구를 겹겹이 지키고 있는 러시아 ‘우주인 훈련센터’로 안내하던 니콜라이씨는 눈 쌓인 길을 천천히 걸으며 ‘가가린의 추억’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결국 우주를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지구인을 훈련시켜 우주로 보내는 이 시설에서 20년 넘게 일하고 있는 우주인 훈련 전문가가 됐다.
전 세계 300명이 넘는 우주인을 배출한 ‘유리 가가린 우주인 훈련센터’. 모스크바 북쪽으로 키 큰 자작나무가 늘어선 시골 길을 두 시간 정도 차로 달려 도착한 ‘즈뵤즈니이 고로독(별의 도시)’에 위치해 있다. 올해 선발돼 2007년 우주로 향할 한국 최초의 우주인 역시 이 곳의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가가린 가족 살고 있는 아파트도
훈련센터에 들어서면 먼저 가가린 동상, 그리고 그 앞에 즐비하게 놓인 꽃다발이 눈에 띈다. 후배 우주인 및 방문객들이 그를 기리며 바친 것들이다. 그 뒤에 가가린의 부인과 첫째 딸이 아직 살고 있다는 우주인용 아파트가 보인다.
니콜라이씨가 가장 먼저 기자를 안내한 곳은 이제 쓸모가 없어진 옛 우주 정거장 ‘미르’의 모형이다. 15년 동안 우주 정거장 역할을 하던 미르와 똑같이 만들어 우주 공간에서 길게는 6개월씩 생활해야 하는 우주인들이 눈 감고도 원하는 장치를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실제와 다른 점은 우주에서 쓰는 태양열 판 대신 전기 코드를 꽂아 작동한다는 점, 그리고 원래는 없는 작은 출입문 하나를 달아 놓았다는 정도다.
현재 우주인 후보들은 러시아 미국 캐나다 일본 등 16개국이 공동 투자해 건설 중인 국제우주정거장(ISS) 모형에서 훈련을 한다. ISS가 만들어진 후부터 가상현실 시스템을 통해 상황과 임무에 맞는 맞춤형 훈련이 가능해졌다. 가상현실 프로그램에서는 ISS 각 부위별 이동, 우주선 장치 조립, 우주선 밖 활동 등의 시뮬레이션을 한다.
마침 ISS 모형에서 훈련을 하고 나온 우주인 두 명과 마주쳤다.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소개하자 “프랑스에서 온 우주인”이라고 반갑게 인사한다. 붉은색 패딩 점퍼와 청바지를 입은 평범한 모습이다. “훈련센터에서는 모두 우주복을 입고 있는 줄 알았다”는 말에 니콜라이씨는 “정말 어려운 훈련은 옆 건물에서 받는데 그 때는 우주복을 입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형 수조 안에서 무중력 상태 훈련
옆 건물에는 이 곳의 자랑인 ‘인공수조 훈련실’이 있다. 무중력 공간에서의 움직임에 적응하기 위한 시설이다. 1980년 1월 28일 문을 연 이 수조는 깊이 12㎙, 지름 24㎙로 건물의 네 개 층을 차지한다. 미국 존슨 우주 센터에도 비슷한 시설이 있지만, 수조 안에 있는 모듈(moduleㆍ우주선 구성 단위)을 바꿔가며 다양한 훈련을 할 수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
우주인 후보가 수조 훈련을 위해 착용하는 우주복은 등 쪽에 무거운 추를 달아 무게가 108㎏에 달한다. 옷을 입기 보다는 설치된 우주복 속으로 들어가 등에 붙은 문을 닫는 셈이다. 거대한 기중기를 이용해 수조 속에 넣어진 후 깊은 물 속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훈련을 계속한다. 지구에선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무거운 우주복을 입고 물 안에서 몇 시간씩 움직이다 보면 아무리 건강한 장정이라도 금세 녹초가 된다.
정말 어려운 훈련은 아직도 남아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원심분리기(센트리퓨즈ㆍcentrifuge)에서 우주선 발사 및 지구 진입 때의 엄청난 기압을 체험해야 한다. 이 기계의 길이는 18㎙, 둥근 방의 반지름은 24㎙에 달한다. 기계 무게는 306톤, 엔진 파워만 약 25㎿로 건물 한 동 전체를 차지한다.
최고 속도는 시속 270㎞. 탑승석의 압력은 1초에 5G씩 높아져, 우주인 후보에게 최고 30G(자기 몸무게의 30배)에 달하는 압력을 가한다. 숨쉬기 곤란한 것은 당연하고 그 안에서 기절하는 일도 다반사다.
절반 정도만 훈련 성공 후 우주로
그런데도 우주인들은 이 같은 혹독한 훈련이 ‘실제 상황’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주’라는 극한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우주인이 받아야 하는 건강검진 항목만 200가지가 넘을 정도다.
니콜라이씨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 건강”이라고 강조하며 현재 사용 중인 우주선을 훈련을 위해 복원한 ‘소유즈-TM’ 모형으로 안내한다. 동그란 모양의 이 우주선 부피는 약 8㎥. 사방이 2㎙ 정도에 불과한 작은 우주선에 세 명이 탑승한다. 일어서는 것은 물론 다리를 뻗을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주인은 卵《?한 마디 크기의 ‘특수 빵’에 의존해 ISS에 도착할 때까지, 무려 이틀 동안 어두운 공간을 꼼짝 않고 날아가야 한다.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자 니콜라이씨는 “각국에서 선발된 정예 우주인 후보들 중에도 10년 넘도록 ‘졸업’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답한다. 힘들게 이 곳까지 와서 우주인 훈련을 통과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니콜라이씨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렇다면 별 수 없죠. 지구에서 일자리를 찾아볼 수밖에….” 실제로 여기서 훈련 받는 사람 중 모든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우주로 가는 비율은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모스크바=김신영 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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