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중앙M&B에서 나온 "다치바나 다카시의 탐사저널리즘"(황영식 지음)이란 책에서 뽑은 글입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소개


다치바나 다카시는 1940년 5월 나가사키(長崎)시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필명과 발음은 같지만 한자는 다른 橘隆志. 1968년부터 현재의 필명을 사용해왔다.
다치바나(橘) 가문은 이바라키(茨城)현 미토(水戶) 일대에서는 유명했다.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낭인이 정착해 염색집을 열었고, 이 염색집에서 갈라져나온 목재상이 바로 그의 집안이지만 할아버지대에 거의 몰락하다시피 했다.
미토의 다치바나 가문에서는 전쟁 전에 다치바나 다카사부로(橘孝三郞)라는 우익 사상가가 나왔다. 미토에서는 처음으로 일고(一高)에 들어간 것으로 유명했던 그는 오래지 않아 학교를 그만두고 미토로 돌아와 농촌청년을 위해 애향숙(愛鄕塾)이라는 교육기관을 세웠고, 다치바나 일족이 이를 총지원했다. 다카사부로의 사상적 근원은 농본주의라고 할 수 있었느나 갈수록 천황주의적 경향이 강해졌다. 그는 다카시의 당숙뻘이었다.
아버니 다치바나 노리오(橘經雄)는 와세다(早稻田) 대학 국문과 출신으로 졸업 직후 나가사키의 기독교계 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당시 이 학교는 총각교사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나가사키 부임을 앞두고 미토의 여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누님(다키시의 고모)의 애제자인 류코(龍子)라는 여학생과 결혼했다. 다키시는 이들 부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다카시가 태어난 직후 아버지는 문부성 관료가 됐다. 다카시가 만 2세 되던 1942년 중국 베이징(北京)의 일본계 사범학교 부교장으로 부임했다. 다카시도 제 2차 세계대전이 끌날 때까지 중국에서 지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으로 돌아온 다치바나 일가는 이바라키 현 히가시이바라키(東茨城)군 나카니시(那珂西)에 있던 외가에 잠시 머물러 있다가 이듬해 미토로 옮겨간다.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단신으로 도쿄(東京)로 올라가 전국출판협회라는 단체 사무국에 들어가 기관지인 ≪전국출판신문≫의 편집장이 된다. 이신문이 나중에 ≪독서타임즈≫로 바뀔 때까지 편집장을 맡았으나 나중에 ≪독서신문≫과 합병해 ≪주간 독서인≫이 되자 이와타니 오니시(巖谷大西)씨가 편집장을 맡고 아버지는 영업직으로 돌아야 했다.
다치바나가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게 된 것도 이런 아버지의 영행을 무시하기 어렵다. 그의 아버지는 애초에 소설가 지망생으로 대학 졸업 후 줄곹 소설을 써오다가 ≪주간 독서인≫ 시절에는 그만두었다.
어머니는 현모양처의 전형이었다. 또한 사회활동에도 열심이었다. '대도시가 싫어서' 또 '아이들 교육을 위해' 미토에 남았던 어머니는 자유학원(自由學園)의 설립자이자 잡시 ≪부인의 벗(婦人之友)≫창간자인 하네히토 모토코(羽仁もと子)의 추종단체의 '벗의 모임(友之會)'의 활동가였다. 그렇다고 특별히 자녀교육에 있어서 자유방임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할 일을 정확히 하도록 시켰다. 교육에 대한 열성도 대단했다.
다치바나가 이바라키 사범학교(이바라키 대학 교육학부의 전신)부속 초등학교를 거쳐 같은 부속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는 이바라키 사범학교 교수에게 상당한 돈을 주고 영어과외를 시켰다.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를 한 것이었다. 그것도 영어 해석과 영어 작문 선생님을 따로따로 붙었다. 이런 어머니의 배려로 다치바나는 외국어에 대한 자신감과 흥미를 가질 숭 ㅣㅆ었다. 1956년 중학교를 마치고 지방명문인 이바라키 현립 미토(水戶)제1고등학교에 입학했던 다치바나는 이듬해 집이 치바(千葉)현 가시와(柏)시로 이사함에 따라 도쿄 도립 우에노(上野)고등학교로 전학했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수재 소리를 들었고 특별히 공부때문에 고생한 일은 없었다. 다만 타고난 음치였던 관계로 음악성적은 늘 최하위였다. 중학교 1학년 이후에는 아예 시험시간에도 노래를 부르지 않았고, 나중에 ≪분게이순주(文藝春秋)≫입사시험에서도 면접시험에 노래 부르는 것이 들어있었으나 거부했다.
반면 체육과목에서는 달리기나 구기는 소질이 없었으나 넓이뛰기, 높이뀌기에는 빼어난 실력을 보였다. 중학교 때 육상부에서 높이뛰기와 삼단뛰기 선수생활을 했고 기록도 뛰어나서 일본 전국에서 1,2위를 다투어 중학생 선수로서는 유명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선수생활을 계속했으나 전학한 도쿄 도립 우에노 고등학교에 육상부가 없어 운동을 그만두었다.
그의 독서열은 뿌리가 깊다. 1995년 말 베스트셀러가 됐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대한민국에서는 일부가 번역되 2001년 9월 출판하였다.)에서 그는 중학교 3학년때 쓴 <나의 독서를 되돌아본다>는 그을 실었다. 학교에 들거가기 전부터 시작된 책 편력에 대한 것이었다.(생략)
(생략된 부분은 <나의 독서를 되돌아본다>글은 대한민국에서 발간된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서 찾아보기시 바랍니다.)
그는 특히 중학교1,2학년때를 "다독(多讀), 남독(濫讀)의 시대였다."며 일본과 세계의 고전 이름을 무수히 들었다. 초서의 ≪켄터베리 이야기≫로부터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까지 많은 책 이름을 들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플로베르의 ≪보봐리 부인≫은 기대했던 정도의 작품은 되지 못했다. 대개 '이건 훌륭한 작품', '저건 세계적 명작'이라는 권유나 독서평에 따라 기대를 품고 읽어보면 실망할 때가 종종 있다. 물론 반대인 경우도 많다. 괴테의 시가 좋아 몇 번이고 읽었다. 그의 시는 내게 슬플 때, 즐거울 때, 외로울때, 기쁠대, 괴로울 때 시를 짓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또 같은 책에 실린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어떤 의미에서 인생에서 가장 책을 읽지 않는 것 아니냐. 시험공부에 시간을 빼앗기게 되니까'"라고들 말하지만 나는 그래도 읽기는 제법 많이 읽었다."
다치바나의 이런 독서경력은 문과 쪽 취미가 강했음을 시사하지만 실제로는 앞에서 밝힌 대로 이과 지망생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다케우치 히토시(竹內均)-(※이 책저자는 竹內均을 다케우치 나라스라고 읽고 썼다. 그러나 제대로 읽는 일본식 음은 다케우치 히토시이다. 그는 지구물리학자로 일본에서 발행하는 과학잡지 NEWTON(한국, 대만등의 세계 여러나라에 번역되 출간하는 과학 잡지)의 발행인으로 2004년 4월 죽을때 까지 NEWTON잡지의 편집장으로 일하였다.)가 쓴 두권짜리 ≪현대 과학 이야기≫가 과학에 대한 그의 관심을 자극했다. 분자나 원자니 하는 당시로서는 첨단의 과학 이야기를 다룬 이책을 읽고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또 하나 ≪에디슨 전기≫란 책에도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회고한다. 미토에서의 중학교 시절 늘 동네 서점에서 필요한 책을 서서 읽고 좀체 책을 사서 읽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를 졸라 이 책만은 사서 읽었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진학지도 교사로부터 색약이어서 이과 진학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고 낙담했다는 애기는 앞에서도 소개한 바 있다. 그 순간 그의 선택은 하나밖에 없었다. 법학부나 경제학부에 들어갈 생각을 추호도 없었다. 관료가 된다든가, 회사원이 되는 인생의 경로는 머릿속에 그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까닭인지 '과학자가 될 수 없다면 저널리스트가 될까' 하는 생각은 있었다. '기자는 참 훌륭하다'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도쿄대학 문학부에서 불문학을 공부하던 시절 그는 공부와 독서에 열중했다. 특히 '무엇이든 시대의 유행에 등을 돌리는' 성벽때문에 남들이 피하거나 소홀히 하는 분야일수록 파고들었다. 졸업논문 주제도 '메느 드 빌랑'이라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혁명 시대의 철학자였다.
대학시절 그는 시를 써서 발표하고 대학신문 현상공모에 소설을 써내기도 했다. 시는 본면으로 썼지만 소설은 '미즈치'라는 필명을 썼다. 소설에 몰두한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아버지가 그랬듯이 문학부 학생들은 누구나 작가 지망생이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가 같은 불문과 4년 센배였던 관걔로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글을 써서 그를 능가하자는 것이 가장 큰 희망이었다고 한다. 오에 겐자부로는 교내의 '은행나무 가로수상' 2등, '오월제상' 1등을 받은 반면 다치바나는 모두 장려상에 그쳤다.
1964년 졸업과 동시에 취직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 되자 오에 겐자부로를 능가하겠다는 꿈은 무산됬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지금 일본에서 다치바나의 영향력은 오에 겐자부로를 크게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
졸업과 동시에 분게이순주(文藝春秋)사에 입사, ≪슈간분춘(週刊文春)≫에 배치됐다. 특집기사 담당으로 당시 제법 인기있던 <이 사람과의 일주일>이라는 연재 특집기사를 주로 썼다. 화제의 인물을 일주일 동안 따라다니며 이모저모를 알리는 기사였고 자연히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는 부드럽고 쉬운 기사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966년 사보에 '퇴사의 변'(※주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 실러 있습니다.)을 싣고는 돌연 사직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월급이 너무 적어 생활이 어려웠던데다 입사 3년째를 넘으면 감히 그만둘 엄두를 못내고 그자리에 붙잡히리하는 두려움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듬해 도쿄대학 철학과에서 학사편입한 그는 한동안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나 거의 대부분 완성하지 못했다. 그러고는 철학공부에 빠져 소설가의 길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나중에 그는 이에 대해 어렇게 회고했다.
"나에게는 바람기 같은 것이 있다. 하나의 소설을 쓰기 시작해 환결할 때까지 잡고 있지 못했다. 도중에 다른 것이 쓰고 싶어져 이리저리 옮게가는 버흑이 있어 미완성 작품이 부지기수였다. 또 역시 소설가란 차근차근 써나가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소설가의 소질이 없다는 판단을 했던 셈이다.
또 하나 짧은 기간이었지만 주간지 기자로서 현실세계 끝까지가 깊숙한 곳의 싶이, 어두운 곳의 깊이 같은 것을 대하다 보니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에 돌아와 철학을 정말 열심히 공부하다보니 문학 따위는 시시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현실과 철학의 세계에서 보니 문학은 대단히 몹쓸 일이었다.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보았자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대학시절은 일본 학생운동사에서 최대의 격동기였다. 1960년의 안보투쟁 이래 해마다 대학은 소요로 시끄러웠다. 더욱이 분게이순주(文藝春秋)사를 그만두고 철학과에 학사 편입한 이듬해인 1968년에는 바로 도쿄대학 휴교사태를 부른 '전공투 운동'의 해였다. 그러나 두 번째 대학생활에서 그는 현실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나의 관심은 완전히 현대에 등을 돌리고 있었고 고대로부터 중세에 걸친 사상가, 그중에서도 특히 신비주의자들에게 쏠려 있었다. 자연히 관심은 한편으로 고대사로부터 역사 이전의 시대, 고고학으로 향했고 또 한편으로는 기독교의 성립과정으로부터 구약성서학과 오리엔트 이교, 인도의 고대사상으로 기울었다. 더욱이 유럽의 암흑기에 고대의 사상적 후계자로서 그것을 다시 활짝 피었던 이슬람 사상가들과 페르시아의 신비 시인들에게까지 관심이 쏠렸다.
당시 내 머리는 그리스어, 라틴어, 헤브라이어를 쑤셔넣기에 바빴고 스스로가 살고 있는 현대라는 시대에 대해서는 거의 눈길도 주지 않았다. 시대를 초월한 세계 속에서 놀면서 사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현대사회에 참여(engage)하는 따위는 엿먹어라 하는 것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대할 때의 내 기본적인 심적 접근법이었다. 나는 완고하게 시대를 거부하려고 했다."
그러나 공부를 계속해 대학에 남으려던 생각에서 시작된 그의 철학공부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다른 수입원이 없었던 그는 철학과 시적에도 ≪슈간분순(週刊文春)≫에 연애소설을 기고하고 ≪영레이디≫의 앵커(특집기사를 맡아 총정리하는 역할)로서 일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다. 전공투 열풍에 말려 도쿄대학이 휴교를 하고 휴교기간의 수업료 문제로 옥신각신 실갱이가 벌어지면서, 그는 수업도 하지 않았는데도 수업료를 내야 한다는 학교측의 주장에 반발, 학교를 그만두었다.
당시 대학의 모습에서 많은 실망을 느낀 것이 직접적인 이유였다. 대학 교수가 된다는 것이 영 신통찮아 보였다. 우선은 도쿄대학 휴교 당시 교수들의 어정쩡한 태도를 보아야 했고, 대학원 수업을 도강하면서 학교 또한 연줄과 파벌이 판을 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일본 학계의 보스격인 도쿄대학교수가 잚은 학자의 인사를 좌지우지하고 있었고 보스와 좋은 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좋은 대학에 취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학교를 그만둔 그는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다. 1960년 '안보투쟁'주역들의 이야기나 전공투 운동에 대해 글을 썼고, 차츰 범위를 '생물학 혁명'같은 쪽으로 넓혀나갔다. 당시 갓 창간된 ≪쇼쿤(諸君)≫이 다치바나의 밥벌이를 위한 글쓰기 작업을 지탱했다. 주로 '기상이변'등 독자들의 흥미를 끌 만한 내용을 다루었다. 다치바나(立花)란 필명을 쓰기 사작한 것도 이때였다. 위낙 다양한 내용을 다달이 쓰다보니 잡지사측에서 또 다른 필명을 귄해 기쿠이리 류스케(菊入龍介)랑 필명도 사용했다.
1972년 들어 그는 이스라엘 여행을 떠나 중동지역을 방랑하고 한 여자에게 빠져 수없이 많은 연애편지를 쓰며 마음의 방황도 겪었다. 신주쿠에 스탠드바를 열어 반 년간 운영하기도 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평생 글을 써서 먹고 살겠다는 확고한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결국 1974년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연구'를 계기로 그는 도저히 발을 뺄 수 없을 만큼 언론인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 이후 변함없이 외길을 걸어왔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평론가, 논픽션 작가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면서 독자적인 조사보도 방법론을 정착시킨 '특종기자'라는 인상도 많이 지워졌다.
그러나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일상어로 발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죽는 날까지 '기자'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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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8
이 들이 말하는 '다치바나와 같은 사람'은 결코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의 다치바나, 즉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와 ≪공산당연구≫, 그리고 ≪록히드 재판을 재단한다.(현재 '논박'으로 바뀜-우리나라에 번역이 안됌)≫등의 정치적인 뉴스를 깊이 파고들었던 다치바나의 모습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1980년대 후반 들어 현대과학과 문명의 문제로 지평을 넓혀가면서 폭넓고도 깊은 지식과 교양을 과시한 다치바나의 모습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다치바나의 변신은 1980년대 들어 시작됐다. 이 같은 변신을 통해 그는 '특종기자', '권력과 싸우는 언론인'의 이미지에 머물지 않고 '일본 사회를 대표하는 지성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됬다. 그리고 그 변신의 방법은 그 동안의 조사보도 방법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조사보도의 대상을 확대한 결과, 심층 과학 저널리즘의 대해로 접어든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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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산지는 2004년 12월 18일 토요일입니다. 이 책은 강동도서관에도없었고, 교민문고, (강남, 광화문)교보문고, (종로, 강남)영풍문고, 리브로등 대형서점에서도 절파능로 안 파는 책입니다. 이 책은 반디앤루니스(옛 서울문고)에서 재고가 단 하나밖에 없어 제가 산 다음은, "절판이라 책을 구할수 없음니다"이라고 할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구한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입니다.

한국일보 도쿄특파원이던 황영식씨가 다치바나 다카시에 흥미를 느껴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저는 이 책에서 다치바나 다카시의 삶을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단 중간 부분은 제가 일본 정치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계속 넘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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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IJI79님의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잃어버린 풍경원문보기
잃어버린 풍경 / 김기찬 / 눈빛 / 2004


80년대 초 강동구 고덕동의 모습을 보았다. 트럭 바퀴 자국이 난 진흙탕에 물이 고여 있었고, 사진 뒤편으로 5층짜리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었다. 이제 막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는지, 또 다른 사진에는 ‘OO 부동산’ 간판과 ‘입주를 축하합니다.’라는 플랫카드도 보였다.



경계 표시판이 세워진 땅, 얼굴에 긴장이 가득한 아저씨, 등을 보인 채 철근 구조물을 보는 할머니, 뭐 그리 신이 났는지 아이들만 공사용 파이프 위를 재빠르게 뛰어가고 있었다.


책소개
'골목안 풍경'의 사진가 김기찬의 새로운 사진집. 유년과 소년시절의 농촌 생활에 대한 기억을 잊지 못하는 작가는, 서울역 앞의 행상과 골목 사진을 찍으면서도 힘들고 외로울 때면 경기도 일원, 오류동, 소사, 중동의 농촌 마을, 미사리,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상사창리 등지를 찾았다고 한다. 1970년 중반쯤 이사한 잠실의 급속한 도시화 과정도 꾸준히 기록해왔다. 이번 사진집에서는 지금은 '잃어버린' 7,80년대 농촌과 도심의 '풍경'에 대해 이야기한다.

초 가집과 돌담길, 맷돌에 두부콩을 갈고 앞마당에선 빈대떡을 부치는 제사 준비 장면, 추수가 끝난 가을 들녘 등 전반부에는 6,70년대의 그리운 농촌 풍경을 담아 놓았다. 뒷부분에는 잠실 주변의 송파, 방이동, 오금동 등지의 쓰러진 망부석과 멀리 들어선 아파트, 닦여진 길, 파헤쳐진 논밭의 을씨년스러운 풍경, 점점 어두워져가는 사람들의 표정 등 급속한 도시화의 과정을 담았다.
[리브로 제공]


아래 사진은 김기찬씨를 찍은 사진으로 조조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 불법으로 사진을 가져 간것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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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석

빨리 하드디스크를 산다음 "잃어버린 풍경" 사진집을 사야겠다.

내는 작년에 사진작가 김기찬씨를 알았다.
고등학교 2학년때, 문학선생님이 만드신 C.A반 생활사연구반(박물관만 순례하는 반)에 들어가서 친구들과 한달에 한두번씩 여러가지 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부터 에로스박물관까지)가보았다.
가을때(10월이었나?) 경복궁 서문 근처에 있는 대림미술관에 가본 적이 있었다.
거기서는 김기찬씨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으며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대학생정도 되는데, 우리들은 교복입고 사진전을 구경을 하니 티가 너무 많이 났다.
구경하던중 김기찬씨가 오셔서 주위 사람들이 김기찬씨 주위로 모였고, 나도 거기에 꼈다.
김기찬씨가 자신이 사진을 찍게 된 경위와 사진에 대한 설명을 죽 하셨다.(그 때 MP3로 녹음을 했어야 하는데...)

김기찬씨가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TBC에 입사한 후 사진을 좋아하던 직장 선배때문이라고 한다. 서울 서민들의 사진을 찍게 된 이유은, 그가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남들은 명절때 시골로 내려갈 때에 서울에서 명절을 계속 보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로 서울 서민에 대한 사진을 많이 찍었다고 한다.

서울에 살던 서민들은 옛날엔 이렇게 살았다고 설명을 계속 하시던데, 나는 내 어릴때가 생각이 났다. 내가 성남에서 살았을때 (아파트에 살았다.) 아파트에서 조금만 가면 상대원동이 있었는데 상대원동은 주택밀집지로, 집들이 빼곡히 있었다. 그 것도 산 중턱에서 주택이 밀집해 있었다. 내 어릴때 성남의 모습은 그때(고2때) 김기찬씨의 사진전에서 나오는 서울시의 모습과 너무 닮은 것 같았다.

어느 블로그에서 김기찬씨의 사진집소개를 보면서 나는 그때(고2때) 봤던 사진들을 떠 올렸블로그에서 소개한 "잃어버린 풍경"사진집을 당장이라도 사보고 싶다.(지금 10만원이 넘는 하드디스크구입을 위하여 저축을 해서 사진집을 산 돈이 없다.)


아래사진은 사진사랑에서 가져왔습니다. 무단으로 가져가서 죄송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바로 지우겠습니다.








김기찬씨 프로필
1938년 서울생.
1964 ~ 1980 TBC-TV 입사. 영상제작부장 역임.
1980 ~ 1994 KBS-TV 영상제작부장 역임.
KBS 방송연구원 교수 역임.
KBS-TV 영상제작국 제작위원 역임.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고위과정 수료(1년)
1994 ~ 1999년 3월 제일기획Q채널국장.
삼성영상사업단 제작위원 역임.
사진예술 편집위원.
동아일보사 사진동우회 회장 역임.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
서울정도600년 사진분과 추진위원 역임(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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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컴퓨터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릴때 부터 장난감으로 만진 것이 컴퓨터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컴퓨터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와 홍익대 수시 1학기에 정보컴퓨터공학부에 재수좋게 합격을 하여, 미래에 컴퓨터가 저의 밥먹이가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빌 게이츠를 존경합니다. (다만 끼워팔기 식으로 독점을 하여 모든사람들이 그의 것만 쓰게 만들려는 짓은 존경하지 않지만) 초등학교 5학년때 읽어본 책 "빌게이츠의 미래로 가는 길"을 읽고 나서는 꿈이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이 희망인 것도 있었습니다.

"빌게이츠@생각의 속도"이후에 요즘 나온 책 "빌게이츠와 워렌버핏 성공을 말하다"를 살 예정입니다. 지금 160GB짜리 하드디스크(10만원을 넘는다)를 산다고 용돈을 모으고 있거든요.

아래의 글은 こもれび(나뭇잎 사이로 새어드는 햇빛)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책소개


ISBN : 89-91141-10-2
제목 : 빌게이츠와 워렌버핏 성공을 말하다
(Biffett & Gates on Success)
출판사 : 윌북
정가 : 12,000

총 152 페이지의 작은 책이다.
미국의 워싱턴대학 강당에서 많은 학생들과 대화한 내용을 책과 비디오로 나온것이다.

어제 정오쯤에 택배사로부터 받고, 오늘 읽어보기 시작하였다.
책이 페이지가 별로 안되다 보니, 금세 다 읽게 되었다. 그러나 머리속에 남은 것은 152페이지 이상의 생각이었다.
물론 152페이지 중에 내용은 반절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반절은 부록으로 대화 내용을 영어 원문 그대로 옮긴 곳이기 때문이다.
그 짧은 내용속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책의 전개방식은 질문내용이 앞에 나오고 그걸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이 답변하는 방식으로 나와있다. 책의 저자는 친절하게 빌게이츠와 워렌 버핏의 답변 내용을 마지막에 의미하고 있는 내용을 짧게 요약해준다. 그 부분을 통해 쉽게 와닿았으며, 한번 읽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게 하였다.

내용은 당연한 내용이 일부였다. 하지만 그 대답을 빌 게이츠, 워렌 버핏 자신만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답하였다는 자체가 읽을 만한 내용이 되는 것이다.

말재주도 없어 길게 내용을 쓰지 못하지만, 한마디 해주고 싶은점은...
꼭, 읽어보라는 것이다. 후회는 없다.
우리가 망각하고 있던 점을 이 두사람은 일깨워 주고 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일을 택하세요. 그러면 성공은 자연히 따라오게 됩니다. 아니, 여러분은 결고 성공을 비켜갈 수 없을 겁니다."
:: 워렌 버핏


[동아일보 서평 ]


미국 워싱턴대 비즈니스 스쿨에서 성공, 미래, 비즈니스에 관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49)과 워렌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75)이 나눈 대담을 비디오와 토씨 하나까지 놓치지 않은 책으로 펴냈다.

‘성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두 사람은 똑같이 부나 명예, 출세가 아니라 ‘열정’이라고 말한다. 성공은 물질이 아니라 사고방식이라는 가르침이다.

버핏 회장은 노장다운 여유가 배어 있는 유머와 철학을, 게이츠 회장은 웃음과 발상의 반전이 담긴 재치 있는 대화를 보여 준다.

세계 1위, 2위 부자라는 타이틀에 가려진 인간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

미국의 비즈니스 잡지 포천이 ‘유머러스하고 철학적이며 비범한 대화’라고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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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범우사 홈페이지(www.bumwoosa.co.kr)












無所有 - 法頂 著
汎友社 汎友文庫002


책소개

* 1984년 이달의 청소년도서 서정
* 1985년 새마을문고 중앙회 선정도서
* 1986년 "사랑의 책보내기"선정도서
* 1990년 서울시립남산도서관 독서권장도서
* 1996년 새마을문고 중앙회 선정도서


法定의 에세이 精神은 심산유곡의 佛心, 고색창연한 불교 신앙을 오늘의 이 현실, 끊임없이 사랑과 증오의 사상으로 갈 등을 일으키는 이 세계로 끌어내온 것이다. 그는 전통신앙으로부터 거의 절연된 현대의 思想市場에 새로 옷 입힌 佛敎의 정신을 우리 앞에 내놓는다.
그의 글들은 대부분 짤막하여 日常 내지 세속잡사(世俗雜事)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이 편린들을 통해 새로이 발견하는 佛敎의 현대적 모습이다.
그를 통해 나타나는 불교는 체념과 도피, 초속(秒速)과 허무(虛無)의 그것이 아니라 참여하고 괴로워하며 비판하고 사랑하는 불교의 모습이다.
그것은 이 세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경이롭게 바라보고 자기 삶의 확대로 체득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다.
절의 뜻에 핀 양귀비를 보았을 때 느낀 다음과 같은 정서는 이 세계의 가장 내밀한 부분과 동정하는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목 차



저(역)자 약 력

(1) 저자 : 법정
저서 : <영혼의 모정><서있는 사람들>외 다수
역서 : <진리의 말씀><불타 석가모니>외 다수


기타 서평

2001년 7월 6일 한국일보

[스테디 셀러] 법정스님 수필집 '무소유'


버릴수록 얻는다고 했다. 무엇인가를 가지려 할 때 거기 얽매이는 탓이다. 설레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소유한 것이고통스런 집착으로 바뀌는 것.
법정 스님(66)은 수필집 ‘무소유’에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것”임을 깨닫고, “나는 하루 한가지씩 버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버리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버린다는 것은 포기하는 것과 달리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갖지 않게 되는 순간이 바로 온 세상을 갖는 순간이다.
1976년 범우사에서 출간된 ‘무소유’는 금전과 소유가 최고의 미덕인시대를 비집고 스테디셀러 중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최근 3판 30쇄(통쇄 104쇄)를 찍었으며 100만부가넘게 팔렸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
-김수환 추기경-
[무소유] 발간 25주년 기념 개정판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따라서 우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본문 중에서-


법정 스님은 침묵과 무소유의 철저함으로 이 시대의 가장 순수한 정신으로 꼽히고 있는 지성이다.
법정 스님은 지금 강원도 산골에서 화전민이 살던 오두막을 빌려 '선택한 가난한 삶'을 살고 있다.
스님은 1992년 4월19일 17년간 지내온 전남 승주 조계산 중턱 불일암에서 내려와 전기도 전화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짜기 강원도로 들어갔다.
출가하는 마음으로 불일암을 따났다는 스님은 밤에 촛불과 등잔 밑에서 책을 읽거나 자연의 소리를 듣다보면 우리가 문명의 이기에 너무 길들여져 정말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스님의 거처는 해발 800미터에 자리잡고 있어 11월이면 얼음이 얼기 시작하는 오지의 중의 오지로 5월 중순경에야 봄이 온다. 1954년 효봉선사 문하에 입산 출가한 스님은 빼어난 문장가로 알려져 있다.
스님의 수필집 '무소유'로 해서 이 말이 단순히 국어사전에나 있는 사전적 낱말의 차원을 넘어 '무소유 정신'이라는 말로 이 시대에 다시 살아나 현대인들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
스님은 1996년 10여년의 고사 끝에 3공화국 시절 정재계 거물들의 사교장으로 이름을 떨쳤던 서울 도심의 대원각을 시주받아 길상사로 이름짓고 이 시대를 한국불교를 상징하는 기념비적 수도 교화 봉사의 도량으로 거듭나게 했다.
스님은 현재 이 절의 회주를 맡고 있다.
영혼을 맑게 해주는 스님의 수필집에는 「물소리 바람소리」 「서있는 사람들」 「산방한담」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버리고 떠나기」 「텅 빈 충만」 「산에는 꽃이 피네」 등이 있다.


무소유는 어떤 책인가

나무 한 그루 베어 내어도 아깝지 않은 책
1976년 4월에 처음 나온 이후 초판 16쇄, 2판 63쇄를 찍었고, 이제 3판이 깔끔한 양장본으로 우리 곁에 다시 다가온 법정의 수필집 「무소유」는 어떤 책인가.
지금까지 모두 300만 부 가까이 팔렸다니 그 천문학적 숫자를 기록한 '무소유'-.
김수환 추기경은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고 말했고, 윤구병 변산공동체 대표는 "무소유는 공동소유의 다른 이름이다. 나무 한 그루 베어 내어도 아깝지 않은 책"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무소유」에는 모두 35편의 맑은 글이 실려 있다.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번쯤 생각해볼 말씀이다.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
우리 시대는 소비의 시대이며, 소유의 시대다. 소유의 즐거움 속에 파묻혀 산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버림'으로써,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가능하다는 내용을 담은 이 책은 소유하고싶은 욕망만큼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소유하고싶은 욕망은 잔뜩 커져만 가는데 행복은 자꾸만 멀어져 가는 인간사는 어쩌면 어처구니없어 보이지만 그 단순한 진리를 우리는 모르고 산다.
바로 이 책의 매력은 이런 단순한 진리를 거창한 언어에 기대지 않고, 그저 일상의 삶에서 구하고 있다는 데서 더욱 심금을 울린다. 요즘도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찾고 있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만큼 각박하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무소유」는 단편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태준의 수필집 「무서록」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여있어 맑은 샘물을 마시는 듯한 기쁨을 선사하는 수필집이다


동아일보 '책과 사람' 1999년 9월18일자

법정 스님 '무소유' 개정판 펴내
강원도 산골에 은거중인 법정스님(64)이 이 가을 자신의 첫 저서인 ‘무소유’를 새롭게 꾸며 내놓았다.
하안거(夏安居)후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한 스님을 최근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만났다.
76년 첫 출간된 이 책은 그동안 80쇄 80만부를 돌파하며 낙양의 지가를 올린 스테디셀러.
문고판 수필집으로는 드물게 대학의 교재로 사용되기도 했고 선물용으로 가장 인기를 끈 책이기도 했다.
책을 읽고 스님에게 감사의 글을 띄운 뒤 출가(出家)한 사람도 있었다.
"책을 낼 때만 해도 이처럼 많은 사람이 이토록 오래 읽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당시만해도 '무소유'란 말이 아주 낯선 단어여서 한문으로 제목을 달았던 기억이 납니다."
'소비가 미덕이고 소비자는 왕이었던 시대'에 이 책이 이처럼 널리 읽혔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사람들이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요,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가 본질적으로는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개정판은 무엇이 바뀌었을까.
"'내용'은 그대로 두고 '표현'을 다듬었습니다. ∼것이다, 그러니까, ∼해버렸다 등의 낡은 표현을 오늘의 문체에 맞게 고쳤습니다. 판형도 4x6 양장본 크기로 바꿨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는 추천사를 써보냈고 도올 김용옥은 "갠지스 강들에 가득찬 모래알 만큼의 칠보(七寶)공덕이 못미치는 무소유 지혜"라고 상찬(賞讚)했다.
윤구병 변산공동체대표는 "무소유는 공동 소유의 다른 이름이다. '나무 한 그루 베어 내어 아깝지 않은 책"이라는 소감을 보내왔다.
스님의 속가 상좌(俗家 上座)인 시인 류시화가 개정판 기획 진행을 꼼꼼하게 거들었고, 판화가 이철수가 제자(題字)와 표지 컷을 만들었다
. 출판사 측은 "'무소유'초판본을 가진 사람에게는 개정판을 무료로 우송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02-717-2121(범우사)

-오명철 기자


문화일보 97년 4월 16일자 38면

문학성과 불교적 지성…출판가 '함성없는 혁명'
로베스 에스카르비는 그의 저서 '책의 혁명'에서 "문고판의 출현은 책의 혁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976년 4월 첫 출간된 법정의 수필집 '무소유'는 국내 출판가에 '함성없는 혁명'을 일으킨 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고판인 이 책이 세상에 나온지 21년째인 97년 4월 현재 21or50만부(3판 52쇄)라는 판매기록도 기록이려니와 그 영향력 또한 가히 '혁명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913년 최남선에 의해 선을 보인 육전소설을 국내 문고판의 효시로 본다면, 63년만에 문고판이 '책의 혁명'을 달성해 낸 것이다.
영국 보다 1백90여년, 미국 보다 80여년 늦은 것이기는 해도 '무소유'가 올린 기록은 대단하다.
수필이 갖는 세련된 문학성과 불교적 지성이 평이한 말로 용해돼 담긴 이 책은 비록 문고한이지만 대중에게 끼친 영향력은 그 어떤 호화 장정판보다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범쯤 생각해 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이니까."
불승이기도 한 저자 저자 법정이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라는 마하티마 간디의 말을 인용하면서 쓴 글이다.
1970년대 중반 40원짜리 라면이 허기진 한국인의 배를 채워 줬다면, 3백원짜리 문고판 '무소유'는 정신적 허기를 메워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님이 쓴 책이지만, 입산속리 하여 면벽좌선 하면서 얻은 난해한 불교적 진리를 설파하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가다, 조조할인 극장에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느낀 단상을, 또는 다락같이 치솟는 아파트값을 걱정하면서 세속의 목소리로 토해 놓은 글들이다.
'무소유'가 처음 나와 16쇄까지는 25편의 수필을 담았으나 85년부터 '신시-서울' 등 10편의 수필을 보태 출판했다. 표지도 세 번 바꿨으며, 책값도 82년까지는 3백원, 그후 90년까지는 1천원, 지금은 처음의 4배나 되는 2천원으로 올랐다.
재미있는 현상은 이 책이 최근 갑자기 눈에 띄게 잘 팔린다는 것이다. 하루에 5백권 이상 팔린단다.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려는 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일까. 책의 판매고가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잘 시사하고 있다.

-노영대 기자


<한겨레신문> 92년 8월12일자

'버림'과 '사랑'의 기르침 설파
"우리들은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범우 에세이문고'의 두 번째 책으로 세상에 나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76년이다. 당시 280원하던 책값은 그 사이에 '크게' 올라 지금은 1천원이 되었다. 하지만 그 가격은 아마도 요즘 책값의 하한선이 아닐지.
다방의 커피 한잔 값도 안 되는 이 돈으로 마음에 드는 책 한권을 살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문고본의 큰 미덕인 것이다.
그러나 「무소유」가 16년 동안 50쇄를 거듭하며 30만여권이 팔려나간 것은 싼 책값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표제글인 '무소유'를 비롯해 이 책에 실린 35편의 글이 설파하는 '버림'과 '사랑'의 가르침이 욕심과 미움으로 찌든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안식처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속의 인연과 소유물을 훨훨 털어버리고 출가한 불승의 몸으로서 선물로 받는 난초 두분을 애지중지 키우다가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깨닫고 그 난초마저 남에게 주어버리는 그의 자세는 '버림'의 참된 경지를 보여준다. "인간의 역사는 소유사"라거나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식의 통찰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적어도 진실의 일단을 적시하고 있다.
법정 스님은 '참여하는 불교인'이기도 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종교인이 과거처럼, 부동자세로서 청산백운이나 바라보며 초연하려 한다면 그런 종교는 없는 것만도 못할 것이다. 일체 중생이 부딪치고 있는 문제는 곧 종교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승인 그가 현실에 참여하는 방식은 드센 고함소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랑과 자비의 부드러운 힘이다.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임을 그는 믿고 있다.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이 나라에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할 만큼 그의 글은 아름답다. 포스트모더니즘에다 '혼성모방'이 운위되고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스타일이 이 땅의 젊은 작가들을 사로잡고 있다는 이즈음 짧은 문장이 이어지면서 빚어내는 그의 글은 참된 우리글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모범적으로 보여준다.
「무소유」가 갖추고 있는 이런 여러 가지 덕목으로 해서 법정 스님은 특히 많은 여성팬을 확보하고 있다. 이 책을 낸 범우사에는 지금도 한 달에 십여건씩 법정 스님의 거처를 묻는 전화가 걸려오며 '팬레터'도 쇄도한다고 이 출판사 사장인 윤형두 씨는 말한다.

-최재봉 기자


<현대불교> 99년 9월 22일자

하루에 한편 또는 이틀에 한편씩 읽는 책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책으로 단연 <무소유>를 빼놓을 수 없다. … 윤형두 범우사 대표는"꾸준히 판매되고 있지만 경제가 어렵거나 금전과 관련된 사회문제가 대두될 때 가장 많이 찾는다"며 "빈부의 격차가 없어지고 부처님께서 염원하는 정토사회가 이뤄질 때 이 책은 사문화 될 것이다"고 말했다.
… <무소유>는 하룻밤에 다 읽는 책이 아니다. 하루에 한편, 아니면 이틀에 한편씩 읽도록 꾸며졌다.


중앙일보 2004년 3월 6일자

지난 2일 범우사 윤형두 대표는 법정 스님의 전화를 받고 무척 기분이 좋았다. 스님이 그의 대표작인 『무소유』를 문고본으로 복간하는 데 동의했기 때문이다. 윤대표는 한 달 전 스님에게 『무소유』를 문고로 다시 내는 걸 요청하는 편지를 썼었다. 복간본은 이달 말 서점에 나올 예정이다.

『무소유』는 범우 에세이 문고 시리즈의 2번이다. 하지만 1999년 이후엔 단행본 형태로만 팔렸다. 200종으로 구성된 문고 시리즈에 '이빨' 하나가 빠졌던 것. 그간 출판사에는 이를 채워 달라는 독자의 요청이 줄을 이었다. 덕분에 『무소유』를 더욱 저렴한 가격에 읽을 수 있게 됐다. 단행본이 6000원인데 비해 문고본은 2800원이다.
『무소유』는 76년 4월 문고 형태로 처음 선보였다. 당시 시리즈 1번은 피천득씨의 『수필』이 기록했다. 이후 『무소유』는 법정 스님의 동의어로 여겨질 만큼 우리 시대 불변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지금까지 대략 250여만부가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무소유』는 법정 스님의 두번째 책이다. 스님은 73년 『영혼의 모음』이란 수필집에 '무소유'를 발표했으나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고, 3년 뒤 『무소유』란 타이틀로 새 책을 내면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지금도 한번 찍을 때마다 1만부를 발행할 만큼 기세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러면 『무소유』는 어떤 내용일까. 책에는 모두 35편의 담백·명징한 수필이 실려 있다. 대표작은 물론 '무소유'다. 3년 간 애지중지·애면글면 길렀던 난초를 놀러온 친구에게 안겨준 스님이 난초에 대한 그의 집착을 돌아보면서 소유욕에 따른 개인·사회·국가 간의 '싸움'을 참회하고 있다.

『무소유』는 지난 30여년 한국 사회의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했다. 사막의 열기보다 더 뜨겁게 경쟁 일변도로 치달아온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그늘을 제공했다. 이것저것 내 몫 챙기기에 바쁜 우리들이 비록 실천은 하지 못하더라도, 한번쯤 가보고 싶은 그런 마음의 평화를 노래했다. 도피적이든, 아니면 창조적이든 '크게 버린 만큼 크게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제시한 것이다.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김수환 추기경), "나무 한 그루 베어내어도 아깝지 않은 책"(윤구병 변산공동체 대표)" 같은 칭찬도 받았다. 출판사에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돈 문제로 옥고를 치를 때 "『무소유』 한번만 읽었더라면"이란 광고를 내기도 했다.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차지하게 된다는 무소유의 역리(逆理)"는 모든 게 혼탁한 요즘 더 그리운 것 같다.

-박정호 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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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내가 중학교 2학년때 산 책이다.
중학교 3학년때 나는 법정스님이 지은 무소유의 문고판을 찾으려고 교보문고, 영풍문고를 갔다. 그런데, 무소유 만은 범우사에서 2000원짜리 문고본을 절판시키고 6000원짜리 양장본만 판다고 그랬다. 그래서 나는 그 책을 사기를 포기 했다. 이유는 내가 돈이 없어 6000원짜리를 살 엄두가 안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민문고에서 책을 보다가 문고판을 보게 되었다. 나는 바로 그 책을 사게 되었고,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맨 처음에 무소유를 읽었을떄, 나는 실로 말을 할수 정도밖에 없는 기쁨에 찼다. 모르는 것을 발견할 때의 쾌락이라 할까.
읽을때 마다 참 어려운 것이 어휘였다. 스님의 글에서는 한자로 된 불교용어가 써저있어 한글전용세대이고 기독교인인 나에게는 일기가 조금 힘들었다. 그 때 나는 불교용어를 조금 알게 되었다.(고2때 문학선생님이 불교용어를 많이 가르쳐 주어 다시 이 책을 읽었을떄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나는 그 때 무소유라는 책을 읽기만 했지, 이해를 별로 못한 것 같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읽어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고1때 학교에서 논술경시대회을 치뤘다. 그때 주제는 무소유에 대한 글이었다. 논술 주제에 대한 지문은 "비명을 찾아서"의 저자 복거일씨의 칼럼(소유가 중요하다는 주제였던 것 같다.)과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있었다. 나는 자신있게 "인간은 소유를 위해 살아간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서는 인간은 가지고 싶은, 알고싶은 소유욕 때문에 인간사회가 발전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 것이 소유라는 것때문이다. 무소유라는 것은 우리가 소유욕에 너무 지나치게 되면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무소유도 소유하고 싶다는 욕심때문에 추구하게 된다."라는 글을 써서 제출 했었다. 그래서 그 것으로 논술경시대회우수상을 받게 되었다.(부상으로 스프링으로 제책된 공책을 줬었다.)

내가 고 1때 이 글을 제대로 이해 하고 있었는가?, 그것은 아니다. 고1때에도 이 책을 읽을때마다 용어가 어려워 읽기가 힘들었으니까.

나는 자주 무소유에 있는 글을 자주 보게 된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따라서 우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본문 중에서-

"무소유"라는 책에서 나는 감동을 많이 받았다. 그 이유는 자주 읽으면 읽을수록 나에게 큰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무소유를 주장하는 무소유라는 책을 모든 사람들이 꼭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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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퍼왔습니다.

책을 읽지 않는 대학생들을 위한 쓴소리
[서평]다치바나 다카시의 <뇌를 단련하다>
김규종(satira) 기자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와 <도쿄대학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상당히 친숙한 다치바나 다카시의 도쿄대 교양학부 강의를 묶어 출간한 서책이 <뇌를 단련하다>이다. 부제 '도쿄대 강의 ⓛ 인간의 현재'가 달려있는 것으로 보아 역자와 출판사는 연작형태로 번역출판을 지속할 의향인 듯하다.

저자 다치바나는 도쿄대 불문학과를 졸업한 다음 '문예춘추'에 입사하였다가, 2년 만에 그만두고 다시 도쿄대 철학과에 입학하여 평론활동을 시작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그는 정치와 사회영역 뿐만 아니라, 우주와 뇌 분야에까지 이르는 다양한 영역에서 탁월한 문필활동을 전개하여 '시바 료타로' 상을 받는 등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일본의 최고 명문대학인 도쿄대학생들의 교양과 지식수준이 너무 낮다는 현실인식에 기초하여 다치바나는 교양학부 학생들이 감당하기에 버거울 정도의 강의를 이끌어나간다. 더욱이 그는 자신만만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설파하는데, 이런 점은 '일본의 이과교육은 19세기 이전 수준이다', '권위를 의심하라', '스승에게 반기를 들다'는 등의 항목에서 강렬하게 그 빛을 발한다.

"일본 고등학교의 물리와 화학에서 여러분이 배운 것의 대부분은 19세기 이전의 지식입니다. 지금 물리나 화학에서 19세기 이전에 얻은 지식과 20세기 이후에 얻은 지식을 비교하면 9대 1정도라고 해도 좋을 지경입니다. 요컨대, 여러분은 곧 21세기 최전선으로 내던져질 터인데, 여러분의 머릿속은 여전히 19세기 이전의 것들로 가득 차 있고, 20세기의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45-47쪽)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입학만 하면 졸업은 당연지사로 여겨지는 일본의 대학풍토와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도쿄대학생들을 저자는 날카롭게 비판한다. 대학졸업 후의 사회생활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지 않고 허송세월 하는 젊은이들을 향한 다치바나의 사자후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생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고 하겠다.

그런데 <뇌를 단련하다>에 담겨있는 내용들은 나와 같이 인문-사회과학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에게는 매우 생경하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저자는 현대사회의 근간을 인류가 20세기에 도달한 자연과학에서 찾고 있으며, 따라서 인문학도에게 보다 폭넓고 정치한 자연과학적 지식습득을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제11회 강의내용인 '대칭성과 그것의 파괴'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세상과 우주의 만물을 '대칭성의 원리'로 이해해왔던 과학자들에게 두 사람의 젊은 중국인 과학자가 도달한 결론 '패리티 보존법칙'의 파괴는 관습적인 사고방식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저자는 '보편성'의 주술로부터 해방될 것을 주장한다.

"이것이야말로 절대적인 진리이자 보편적인 진리다, 하는 것에는 대개 의아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며, 어느 날 전부 전복될 수 있다는 겁니다. 과학의 역사나 인간의 지의 역사도 다 그렇습니다. 역으로 그런 일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지의 역사가 빠르게 생성 발전하여 여기까지 온 것이지요... 따라서 진리라고 알려진 것이 뒤집히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356쪽)

여기서 그가 내세우는 전복(顚覆)의 사유는 <뇌를 단련하다> 곳곳에서 독자를 사로잡는데, '강의를 제껴라', '사전을 통째로 읽어라', '유급을 해라', '상식의 벽을 깨뜨려라' 등의 항목에서 그것은 구체적인 내용과 외양을 확보한다.

그는 폴 발레리의 산문 <테스트 씨와의 하룻밤>과 데카르트의 체험을 본보기로 들면서 전복의 사유, 즉 '지적인 쿠데타' 혹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강조한다. 앞으로 전개될 인생을 설계하면서 젊은 날 반드시 맞닥뜨려야 할 필요충분조건으로써 인식과 발상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라고 다치바나 다카시는 힘주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적 전환은 모든 연령층의 사람에게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데 반하여, 지적인 쿠데타는 열아홉에서 스물세살 사이에 가장 많이 일어납니다. 바로 여러분의 나이입니다. 지적인 쿠데타는 '산고와 흡사한 고뇌' 끝에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 고통이 전혀 없는, 그리하여 뇌가 늘 태평한 사람들에게는 평생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160쪽)

저자는 깊고도 다채로운 독서와 기록, 사유와 일상적인 실천을 통하여 자신이 도달한 지의 영역을 화려하게 펼쳐 보인다. 인문과학에서 시작하여 사회과학을 거쳐 자연과학에까지 미치는 그의 지적편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일종의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교양의 범주를 확산하여 편협한 지식인의 양산이 야기하는 폐해를 줄이자고 호소한다. '프로페셔널한 제너럴리스트', 즉 우리말로 전문적인 '팔방미인' 정도로 자신을 소개하면서도 다치바나는 "과학을 알고있는 철학자"로 불리고자 한다.

그는 스노의 저작 <두 문화와 과학혁명>(1959)을 예로 들면서 20세기에 보다 심화된 미분화와 세밀화 과정을 거쳐 상호이해를 포기한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소통불가능을 지적한다. 문과계 지식인의 반과학적 경향, 기초연구자와 응용연구자 사이의 몰이해, 생산분야 담당자와 순수연구자 사이의 괴리라는 3중의 장벽을 다치바나는 밝혀내는 것이다.

이런 논거에 기초하여 저자는 지난 세기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오늘을 사는 대학생들에게 광범하고 풍요로운 독서를 권장한다.

"사회에 나가면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지금의 10분의 1이나 20분의 1로 줄어듭니다. 그제야 학창시절에 책을 좀더 읽을 걸, 하고 생각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지닌 최대의 자원은 공부 가능한 시간입니다. 지금 그 시간을 배움에 쓰지 않는 사람은 자기의 가장 큰 자산을 무의미하게 하수구에 던져버리는 꼴과 마찬가지입니다." (250-251쪽)

오늘날 영상문화와 놀이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 저자 다치바나 다카시가 던지는 문제의식은 실로 엄중하다. 나날이 늘어가는 현대사회의 과학-기술적인 발견과 진척에 뒤쳐진 채 향락하면서 '지금'과 '여기'에 함몰될 것인지, 아니면, 드넓은 지의 세계로 과감하게 뛰어들어 지식의 생산자이자 수혜자가 될 것인지를 일본의 지식 전문가는 묻고 있는 것이다.



<뇌를 단련하다>, [도쿄대 강의 ⓛ 인간의 현재], 다치바나 다카시, 이규원 옮김, 청어람미디어, 2004년.


2004/03/21 오후 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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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테크놀러지가 잉태한 인간의 미래
[서평] <21세기 知의 도전>(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동네약국마다 보통사람에 비해 기억력과 사고력을 2배로 증가시키는 약을 판매하고 있다. 암이 정복된 지 이미 오래고 사람들은 자신의 유전자 특성에 맞춰진 맞춤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다. 심장이나 폐, 신장과 간 등의 장기는 각 개인의 유전자 정보에 의해 간단히 인공적으로 만들어져 쉽게 이식이 가능하며 인간은 질병으로부터 거의 해방되었다.

첨단 바이오테크놀러지 기술은 의학부분 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친다. 석유는 더 이상 고갈되기만 하는 화석 연료가 아닌 특정 미생물이 만들어 내는 반영구적인 자원이며, 완벽한 유전자 조작을 통해 식량문제도 해결된다.....』


위의 글은 50-100년 정도 지난 후의 미래에 관해 잠시 상상해 본 내용이다. 물론 다치바다 다카시가 저술한 <21세기 知의 도전>이라는 책을 읽고 쓴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우주로부터의 귀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도쿄생들은 바보가 되었는가>에 이어 이 책은 네 번째로 만나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저작이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그의 책을 읽다 보면 누구도 범접하기 힘든 저자의 지식 앞에서 쉽게 주눅이 들곤 한다.

이미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서 그의 방대한 독서량과 다양한 부분에서의 탁월한 지적능력이 확인된 바 있고, <우주로부터의 귀환>에서는 한 가지 주제에 관한 다치바나의 열정적인 탐구심이 엿보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건 그의 저작들에서 느껴지는 그의 이미지는 다분히 과학자적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실상 그는 불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문과계열의 지식인이다. 그러나 지식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된 각 분야에 대한 독학과 엄청난 독서량은 그를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첨단 과학기술의 첨병으로 만들었다.

이번 저작도 이러한 그의 능력이 결집된 책으로서 21세기에 가장 주목받고 있는 바이오테크놀로지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가능성 등을 잘 정리해 놓았다.

이 책은 작가가 한 TV방송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가한 후 방송에서 미처 보여주지 못한 취재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21세기 知에 관한 체제를 바이오 테크놀러지를 중심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21세기는 컴퓨터 정보과학과 바이오 기술의 시대이다. 특히 인간의 유전자 정보가 완전히 해독되었다는 얼마 전 뉴스에서 우리는 다음 시대에 있어서 바이오 기술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쉽게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유전자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지식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사회 전반에 걸쳐 퍼져 있는 지식 능력의 하락과 이공계 학문에 대한 경원이 그 원인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에게도 많은 질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공대에서 공부를 하였음에도 어려운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치바나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정말 재미있다. 특히 유전자에 관한 최신 학문들을 소개해주는 부분에서는 거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에 빠져들 정도였다.

뇌의 수용체와 지식의 전달 유전자를 조작하여 만들어진 천재쥐의 이야기나 에이즈 바이러스를 이용한 벡터(유전자의 운반체)에 관한 연구, P53 단백질을 통한 암의 치료와 그 향후 연구과정 등은 기존에 알고 있었던 유전자 치료에 대한 인식의 벽을 깨주는 내용이다. 그리고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유전자 공학이나 유전자를 이용한 연구에 대하여 많은 걸 알려주기도 한다.

특히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데 유전자가 이렇게 다양하게 이용되고 연구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이다. 또한 키메라니, 염기구조니, 아데닌이니 하는 전문적인 단어가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조금씩 언급되었던 것이라는 사실에 책을 읽는 재미가 배가되기도 한다.

유전자를 이용한 장기복제나 혹은 머리가 좋아지는 약 또는 인간복제에 관한 내용들은 윤리적인 문제를 항상 동반한다. 인간의 윤리상 '유전자를 변형하여 장기를 복제해서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 일인가' 하는 윤리적인 물음은 어찌보면 바이오테크놀러지의 발전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생명존중과 윤리성에 관한 다양하고 광범위한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생명공학 자체는 위험한 판도라의 상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책에선 잠시 언급하고 지나갔지만 생명공학과 윤리성의 문제는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할 사항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현재 연구되어지고 실제로 적용되는 바이오테크놀러지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각 개인들도 숙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20세기는 시간의 측면에서만 따져본다면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인류가 이루어낸 과학기술의 발달 측면에서 20세기는 정말 정신없는 고도의 발전기간이었다. 과학기술의 표면적인 발전뿐만 아니라 그 이면의 윤리적인 문제나 종교적인 문제에서 엄청난 변화를 짧은 시간동안 겪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결론적으로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바이오 테크놀러지의 충격에 대비하여 우리는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인 대비를 위해서라도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생명과학기술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철한 지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또한 가까운 미래에 어떤 첨단기술이 세계를 지배할 것인가에 대한 예측도 필요하다. 그래서 당당히 이 책을 권하고자한다.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www.readersguide.co.kr)의 베스트리뷰로 뽑힌 전제훈(jjolpcc) 님의 글입니다.

2004/01/30 오후 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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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경험을 통해본 전문독자의 독서습관

명희복(myunghb) 기자
다치바나 다카시는 일본인으로 세계적인 독서가다. 오랜 기자경력도 겸비하고 있다. 전문기자이면서 전문독자인 셈이다. 쓰기 위해서 읽는 것은 자신의 고유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읽고 쓰는 것을 동시에 잘 하기는 여간 쉽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면 그는 프로 곧 전문가임이 분명하다.

전문독자로서 다치바나 다카시의 독서습관은 과연 어떨까? 무척 궁금해질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서 바로 독자가 저자에게 갖는 호기심을 해소시켜줄 것이다. 표제자체가 독자의 의문에 대해 어느 정도의 해답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자신의 독서경험을 서술한 내용이라는 것이 쉽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본서는 겉보기에도 적은 분량이라 친숙하게 느껴진다. 구성도 복잡하지 않다. 누구나 목차를 한번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만한 내용인 것이다.

나의 지적 호기심/나의 독서론/나의 서재 작업실론/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우주 인류 책/ 역자후기/다치바나 다카시 등의 순으로 짜여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나의 독서론/나의 서재 작업실론 등 두 개의 장이다.

나의 독서론은 저자자신이 전문기자이자 전문독자임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장이다. 저자는 때로 하나의 기사를 작성하느라 책장 두 칸 정도의 분량을 읽곤 한다는 사실에서 그의 프로정신을 읽을 수 있다. 완벽성을 추구하는 기자로서의 당찬 기질을 보여주는 일례다.

저자는 책을 사는데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 철저한 인물이기도 하다. 기사를 쓰기 전에 서점가를 둘러보기도 하였는데 저자의 책 선별법은 독특하다. 저자는 책을 세 종류로 구별해서 산다. 읽고싶은 책/재미있는 책/꼭 읽어야 할 책 등이다. 인상적인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혹자는 한 권의 책에서 세 가지 욕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아니다'이다. 세 요소를 전부 포함하는 것이라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아주 부실한 책이 되고 말 것이다. 꼭 읽어야 할 책은 거의 의무감에서 읽어야 하기에 독자에게 희망과 흥미를 동시에 가져다주기에는 어려운 것이다.

자신에게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게 효율적이다. 자신의 업무를 말끔하고 전문성 있게 처리하고 싶으면 꼭 읽어야 할 책을 읽는 게 낫다. 내용이 딱딱하거나 너무 진지해서 답답하다고 느끼면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게 좋다. 이들 세 종류의 책읽기를 잘 활용하면 평생 신바람 나는 독서를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서재 작업실론에서는 소박하면서도 실용주의자적인 저자의 일면을 살필 수 있다. 독서환경을 저자자신이 체험한 그대로 드러내어 다수가 공감할 수 있게 한다. 사과상자로써 책장 및 방을 둘로 나누는 벽으로 활용한 점이다. 기발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이외도 저자의 전문독서가다운 면모는 많지만 세 가지만 더 제시하고 싶다.

첫째는 서점에 빚을 감수하면서도 책을 사들일 수 있는 책에 대한 애착이다. 둘째는 무슨 책이든 사면 자신의 손으로 한번씩이라도 넘겨보고 책장에 꽂는다는 점이다. 셋째는 자신이 읽을 책을 반드시 정리해 둔다는 점이다. 비서를 고용해서라도 철해둠으로써 다음 글을 쓸 때 충분한 독서자료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오래도록 독자의 기억에 남을 독서관련서 한 권을 써보고 싶은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는 훌륭한 길잡이 곧 안내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청어람미디어, 2001. 1만 2천원. 306면.
2003/07/28 오후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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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12일 2학년때 문학선생님이자 3학년 독서선생님이신 허섭선생님이 수시 합격후 주신 2권의 책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와 "한국의 교양을 읽는다"는 아무리 읽어봐도 너무 어려웠다.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와 "한국의 교양을 읽는다"를 읽으면서 이게 무슨 뜬구름잡는 이야기이고, 호박 굴러가는 소린지... 내가 그동안 뭐 공부했는지... 내가 뭘 알았는지...

휴...

그런데 어느 웹싸이트에서 나를 구원해준 말이 있었다.

궁리닷컴의 운영자이자 "한국의 교양을 읽는다"의 엮은이 중 한 분인 표정훈씨는 그의 홈페이지 궁리닷컴(www.kungree.com)에 이런 서평을 냈다.


이 책을 우리나라 고등학교 학생에게 권할 수 있을까?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로서는 권하기 곤란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철학, 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역사 등의 다방면에 걸친 배경 지식, 특히 고전에 관한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 혹은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이 기본적으로 '프랑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나라 학생이 이 책의 내용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주눅들거나 좌절하거나 할 필요는 전혀 없다.

궁리닷컴에 실린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서평에 직접 확인을 바람니다.

이 책들을 보고 나는 노신(魯迅)의 아Q정전(阿Q正傳)의 아Q처럼 자기 합리화를 시도를 해보았다. 그리고 나서는 이 책을 안 읽었다. 바보같이...

교보문고에서 나오는 11월 잡지 '사람과 책'을 읽다가 너무 좋은 글을 보았다.
"아침편지문화재단"의 고도원씨를 인터뷰한 글인데
(상략)
중학교 1학년이 보기엔 어려운 책이었지만, 아버지는 "부드러운 음식만 먹으면 이가 상한다.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이가 건강해진다."면서 저 책들을 권했다 한다. 군데군데 그가 펼치는 책갈피에는 열서너 살 고사리 손으로 그어 놓은 연필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하략)

이 글을 읽는 순간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내가 썩은 아Q정신(할일은 계속 미루어서 안 좋은지 알면서도 자기 합리화를 통해 할일을 계속 안하는 못된 버릇) 때문에 부드러운 음식(만화책, 소설)만 먹으니 이(지혜)가 약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나는 이 글을 읽고나서 다시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와 한국의 교양을 읽는다를 읽었다.
계속 읽으면서 내가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보면서 자꾸 지식을 쌓여져 가는 것을 느낀다.

나는 허섭선생님에게 감사함을 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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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지식총서39-유대인



<책소개>



전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민족으로 꼽히는 유대인 분석서. 유대교의 가르침을 지키고 믿으며 유대인의 문화를 이어받은 사람들을 일컫는 유대인은 인종적으로는 혼혈 민족이다. 탈무드, 통곡의 벽, 디아스포라, 히브리어, 토라, 유대식 육아법 등으로 알려진 유대인의 역사와 현재, 유대인 음모설 등을 주로 다루었다. 저자는 유대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탈피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지은이>



정성호 - 현재 강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이며, 미국 뉴욕주립대(Albany)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저로는「현대 한국사회의 이해」「세계화와 사회변동」등이 있고, 역서로는「현대사회학」, 논문으로는 <유태인 네트워크의 위력>, <화교 네트워크의 특성과 위력>, <중앙아시아 한인의 사회문화적 특성과 과제> 등 다수가 있다.

<차례>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고난과 형극의 유대인

반(反)유대주의란

유대인의 조국, 이스라엘은 어떤 나라인가

디아스포라의 유대인

유대인의 위력

유대인 네트워크의 위력

유대인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나의 서평>



리브로에서 살림지식총서를 10%할인해 판다고 해서 이 책을 사보았다.
유대인들은 어머니가 유대인이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경우를 맣란다. 유대인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과학, 예술등 모든 방면에 걸쳐 그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는 곳이 없다.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1400여만명의 유대인들이 세계를 좌지우지한도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중동사태와 911테러로 유대인들을 보는 시선이 너무나 따갑다. 이 책은 유대인이란 무엇이고 전세계의 유대인들의 성격, 특성들을 살펴보고, 유대인들이 전세계적으로 보이는 위력을 소개하였다.
이 책에서는 유대인들의 성공비결을 뛰어난 머리가 아니라 그들의 뛰어난 교육방식과 뛰어난 결속력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사람들은 대부분 유대인들은 종족 자체가 머리가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은 유대인들이 머리가 좋은 것은 머리를 쓸수 밖에 없는 교육방식으로 인하여 두뇌계발이 이루어져 머리가 좋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흩어져 살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서로서로 상부상조하고 조직을 만들어 사회에 참여하는 것이 혈족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기부가 일상생활화가 되고, 조직으로 뭉쳐 공적 활동에 참여함으로 어떤 사회에서든지 적응력을 길려 성공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21세기는 네트워크의 사회이며 '민족'이라는 동질성과 정체성이 네트워킹에 커다란 위력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페이지 94쪽
이 책은 유대인과 화교를 비교하여 우리 민족도 전세계곳곳에 널리 펴져 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 나아갈길은 유대인과 화교와 같이 전세계에 펴져있는 우리민족들을 조직으로 뭉치면 전세계에 우리민족의 목소리를 높일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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