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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길을 묻는 아이들-원조교제와 청소녀'
‘원조 교제, 살아 남기 위한 몸부림?’
책 ‘원조 교제와 청소녀’가 말하는 원조 교제, 또다른 시각
미디어다음 / 김준진 기자
지난 27일 제주경찰서는 인터넷을 통해 만난 10대와 돈을 주고 성관계를 맺은 혐의(청소년성보호법 위반)로 임모(42)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지난 25일 서울 강서경찰서는 미성년자 이모양(16)을 내세워 성매매를 미끼로 성인 남성을 여관으로 유인한 뒤 금품을 훔친 김모씨(22) 등 3명에 대해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처럼 청소년 성매매 관련 기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불거진 우리 사회에서 ‘원조교제’는 여전히 현재형인 것.
성인 남성과 10대 여성 사이의 성매매 관계를 일컫는 ‘원조교제’. 김고연주(27, 연세대 박사과정)씨는 최근 나온 책 ‘길을 묻는 아이들-원조교제와 청소녀’(책세상)를 통해 ‘원조교제’는 우리 사회가 필연적으로 만들어낸 병폐라고 말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조기 성애화 ▲소비 자본주의 ▲10대에게 닫힌 노동시장 ▲열린 인터넷 등이 청소녀의 ‘원조교제’를 용인했다는 얘기다. 김고씨는 또 원조교제를 경험한 네 명의 10대 소녀와 그렇지 않은 그 또래 아이들 20여 명과 지난 2년 간 심층면접을 통해 원조교제에는 자신의 의지와 사회적 여건에 따르는 일정한 ‘행위성’도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는 ‘청소년 성매매’와 원조교제를 먼저 구분한다. 광범위한 뜻의 청소년 성매매와 달리 ‘원조교제’는 성인 남성과 미성년 여성이 개인적으로 성을 매매하는 때에만 한정된다는 생각에서다. 청소년이라는 말도 원조교제의 당사자 대부분이 10대이며 여성이란 것을 강조하기 위해 ‘청소녀’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여전히 원조교제를 권하는 가부장적인 기성세대의 사고방식과 물질만능주의에 시름하는 자본주의, 이에 원조교제의 확산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책을 통해 살펴본다.
청소녀들이 자발적으로 원조교제를 한다는 인식이 사회에 만연해 있지만 ‘자발성’이라는 개념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이 같은 맥락에서도 청소녀들을 원조 교제로 내모는 사회적 요인들을 들춰봐야 한다.
▲ 조기 성애화
“남자 선생님들이 여자 반에서 냄새가 난다고 하면…”
지난 2001년 8월, 국무총리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신상을 공개하자 지나던 시민들이 명단을 살피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학교에서 가끔 여자 선생님들이 남자 선생님들 앞에서 다리 붙이고 앉으라고 해요. 끈 달린 민소매 같은 옷 입지 말라고 하고요. 브래지어만 입고 교복 입는 애들이 한 반에 두세 명 꼴은 되거든요. 또 남자 선생님들이 ‘여자 반에서 왜 이런 냄새가 나?’ 이러든가 아니면 ‘여자들이 안 씻고 다니냐’ 등의 얘기를 하죠”
은미(17, 가명)의 말이다. 이처럼 청소녀들은 가정과 학교로부터 정숙한 자세를 익힐 것과 성적으로 소극적이 될 것을 요구 받는다. 성에 대해 학교와 가정에서 지속적인 감시와 규제가 행해지는 가운데 청소녀들은 한국 사회에서 요구되는 여성다움을 습득해 가는 것이다.
반면 사회로부터 청소녀들은 섹시하고 도발적인 여성이 매력 있다는 사실도 동시에 학습하게 된다. 이어지는 은미의 말에 이 같은 내용이 잘 드러난다. “남자들 몇 명 사귀다 보면 제가 저절로 여자답게 돼요. 남자애들이 외모 안 되는 애들 피하잖아요. 딱 봤을 때 ‘아, 쟤 괜찮다!’ 싶으면 바로 작업 들어간대요”
매스컴도 조기 성애화에 큰 영향을 차지한다. 매스컴에서는 남성보다 여성의 섹시함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과거에 금기시되던 청소녀들의 섹시함을 강조하면서 또래 청소녀들의 열망은 커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에 청소녀들은 매스컴에 등장하는 얼짱과 몸짱 여성들 대부분이 성형수술을 거쳤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간혹 자신들도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고 이는 섹시한 몸에 대한 선망이 매스컴을 통해 각인된 까닭이다.
▲ 소비 자본주의
“원조교제를 하면 창피한데도 돈의 유혹이 더 강해요”
지난 5월, 정부 중앙청사에서 청소년보호위원회 주최로 열린 성매매 피해 청소년들의 기자회견 모습.[사진=연합뉴스]
“원조교제를 딱 끊을 수도 있는데 유혹을 느껴요. 정말 사고 싶은데 엄마가 안 주면 다시 하게 돼요. 용돈이 일주일에 만 원밖에 안 되고요. 원조교제를 하면 창피하잖아요. 그래도 돈의 유혹이 더 강하죠. 돈만 있으면 술, 담배, 옷.… 한 달에 10만원이면 되는데 막상 쉽게 돈이 생기면 또 옷을 더 사고 싶은 욕구도 생겨요”
원조교제를 경험한 희진(18, 가명)이의 말이다.
이처럼 십대들이 공부에만 전념하던 과거와 달리 자신들의 문화와 정체성 형성을 중요시 하면서 십대의 소비 규모도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다. 이와 함께 십대를 겨냥한 상품시장도 패션을 기본으로 음반, 화장품, 먹거리, 스타산업, 영화 등으로 크게 넓어졌다. 경제력이 없는 청소녀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원조교제의 유혹도 그만큼 강렬해진 것이다.
“원조 교제 맨 처음엔 10만원 달라고 해서 10만원 받았는데 나중엔 그걸로 부족하니까 20만원씩 달라고 했죠. 매일 해서 밥값, PC방비, 교통비로 썼고요. 남은 돈 없이 다 썼어요. 남자친구도 만나서 쓰고 그러다 헤어지면 또 다른 친구 만나서 노래방 가고 액세서리 사러 가고 군것질도 하고요”
별이(16, 가명)와 같은 우리 사회의 청소녀들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적당한 놀거리와 공간이 없다는 문제도 심각하다. 자연스레 청소녀들은 유흥공간을 찾게 되고 이 곳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여기에 외모에 대한 소비 역시 청소녀들을 유혹한다.
“화장을 하고 정장을 입으면 어른스러워 보이고 예뻐 보여요. 그리고 사람들한테 꿀리지가 않아요” 다방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금희(17, 가명)는 십대지만 화장을 하고 정장을 입는 등 여성이 외모를 가꾸는 가장 전형적인 방식에 따른다. 지금까지 남성 중심적인 한국 사회에서 학벌이나 능력보다는 외모가 뛰어난 여성이 능력 있고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는 것과 크게 무관하지 않다.
▲ 십대에게 닫힌 노동시장
“하루 12시간 일해도 한달에 35만원 밖에 못 받아요”
최근 출간된 '길을 묻는 아이들-원조교제와 청소녀' [사진=책세상 제공]
“같이 살던 오빠네 고깃집에서 15~17시간 일했어요. 늙은 술손님 주정부리는 게 힘들었죠. 미용실에서는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9시까지 시다로 일했어요. 자격증이 없거든요. 그래서 돈도 한 달에 35만원 밖에 못 받아요”
금희는 노동부의 근로지침서와 전혀 상관없는 다른 나라에서 일한 듯 하다. 지침서에 따르면 고용주는 십대에게 하루 7시간(1주일 42시간) 이내로 고용할 수 있고, 본인의 동의를 얻어야만 1일 최대 8시간, 1주일 48시간까지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금희는 심층면접 당시 십대 최저임금인 시간당 2048원(2002년)의 반 정도에 불과한 시급 1080여 원을 받고 일한 셈이다. 이는 곧 노동권이 부정되는 것과 마찬가지.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했는데 매니저가 변태 같아서 여자 알바생들 엉덩이를 막 만졌어요. 남학생은 보수도 더 많이 주고 더 믿는 거 같았죠. 남학생은 주로 배달이나 여자보다 더 중요한 일, 여자들은 청소나 요리 같은 거…. 그래서 부모님은 여자가 알바하는 거 싫어해요”
하경(18, 가명)이의 얘기에서 십대들의 노동시장, 알바에서도 남녀차별이 심각한 것이 쉽게 드러난다. 심지어 십대 노동시장에서 성희롱 경험까지 하게 된다는 것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실례로 2002년의 한 통계에 따르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녀들의 9.3퍼센트가 성희롱 경험이 있었고, 가해자가 업소 직원일 경우가 47.6퍼센트, 손님이 39.8퍼센트, 동료가 12.6퍼센트로 나타나기도 했다.
▲ 열린 인터넷
“오프라인으로 많이 만나서 놀죠”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제23회 대한민국 공익광고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마우스' 작품. 인터넷 원조교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다.[사진=연합뉴스]
“(온라인으로 처음 보고)오프라인을 많이 해요. 특히나 같은 지역일 경우에는 거의 만나는 편이고요. 만나면 그냥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하거나 놀기도 하고, 방송국이나 다른 행사장에 가기도 해요” (영아)
“(채팅으로 만나면)가끔 밖에서 만나요. 만나서 그냥 놀고요. 온라인으로 얘기할 때랑 만났을 때랑 전혀 다른 사람일 때도 있고요”(별이)
고등학생를 다니는 영아와 원조교제를 하는 별이 모두 인터넷 채팅에서 오프라인 만남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이들은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오프라인에서 만나기도 하면서 인간관계를 확장할 뿐만 아니라 낯선 사람과의 만남 자체에도 익숙해졌다. 나아가 인터넷에서도 여전히 구분되는 성별은 ‘익명성’이라는 날개를 달면 사용자에게 다양한 성적행위를 가능하게 한다.
“인터넷 하다가 쪽지에서 돈 많이 주고 초짜도 괜찮다고 해서 다방에 가게 됐어요. 처음에는 가보면 무슨 일인지 안다고 했죠. 그래서 갔는데 못 나오게 된 거고요. 아무도 없을 때 겨우겨우 5일만에 도망 나올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선주(18, 가명)는 이처럼 인터넷 채팅을 하다가 다방에서 일하게 됐다. 이처럼 현실에 일상화된 인터넷은 간혹 성적 서비스 산업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청소녀를 돈으로 유혹하는 요긴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사회적 관심이 필요해"
김고씨는 “원조교제는 반쯤 연애라고 볼 수 있다”며 “경제력 있는 남성이 어린 여성과 연애나 성관계를 가지며 물질적인 보상을 하는 것은 여전히 공공연한 사실이다”고 말했다. 이에 그는 “쉽게 돈을 벌려고 했던 아이들과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던 사회를 인정하고 이를 정면돌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그는 “원조교제를 경험했던 아이들도 이해하고 포용하면서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사회가 먼저 열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아이들과 그 또래문화는 성에 대한 가치관에서도 기성세대와 큰 차이를 보이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너는 소중하고 가치있는 존재다’라고 말하며 사회적 관심을 보이는 게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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