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려군(鄧麗君, 중국어로 '덩리쥔'으로 읽고 일본에서는 '테레사 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대륙에서는 '중국에는 두명의 덩(鄧)이 지배한다. 중국의 낯은 덩(鄧)-덩샤오핑(鄧小平)이 지배하고 밤은 덩(鄧)-덩리쥔(鄧麗君)이 지배한다'우스갯소리까지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발매된 등려군CD에 있는 등려군 소개를 올립니다.
등려군의 데뷔와 활동 1953년 1월 29일 대만 출생으로 16세(70년)때 가수로 데뷔했다. 당시 대만의 인기 드라마인 <정정(晶晶)>의 주제곡 "아일견니취소(我一見니就笑)"를 부르면 서 바로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맑고 고운 미성이 매력적이었다. 그 후 약 5년 동안 홍콩과 대만, 싱가폴,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활동을 하며 독보적으로 인기 가수의 자리를 지켰다. 특히 홍콩과 대만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나 드라마의 주제곡을 많이 불렀으며 이 드라마나 영화가 상영되는 곳마다 등려군의 노래는 사랑을 받았다. 이때 인기 를 얻었던 드라마곡으로 <해구비처(海鷗飛處)>의 주제곡 "해운(海韻)" "천언만어(千言萬 語)", <채운비(彩雲飛)>의 주제곡 "아전능이개니(我眞能離開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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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일본 진출 그러다가 1974년 2월 21일에는 일본 음반사와 계약을 맺고 일본 무대에 진출하게 된다. 이 때는 등려군이라는 한자 이름보다는 Teresa Teng이라는 영문 이름을 주로 사용했다. 그녀는 "정인적관회(情人的關懷)"를 일본어로 불러 1974년 일본에서 新人가수상을 수상했으며 이 곡이 수록되어 있는 음반이 일본에서만 70만장이 팔렸다. 대만인으로서 일본에서 이렇 게 성공을 한 예는 없었다. 철저하게 일본어를 익혀 일본가수로 활동하면서 등려군은 지명 도가 더욱 높아졌고 서양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등려군의 대표 곡인 "재견아적애인(再見我 的愛人)" 역시 이때 일본에서 불렀던 곡이다.
다시 미국으로1979년까지 일본시장에서 중심적으로 활동하던 등려군은 같은 해 2월 뜻하지 않은 사건을 당해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일본 입국중에 비자에 문제가 생겨 구류를 당하면서 실의에 빠진 등려군은 재충전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문화를 접하면서 전문적으로 영어를 배우게 된다. 다시 활동을 시작한 등려군은 2년이라는 공백기간과는 관계없이 또 다시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등려군의 1980年代 70년대에 이어 80년대 후반까지 계속해서 신곡을 발표하며 활동을 하던 등려군은 1983년 라스베가스에서 처음으로 콘서트를 열었고 1985년에는 대만을 시작으로 데뷔 15주년 기념 동남아 순회공연을 갖기도 했다. 크고 작은 공연을 수없이 가졌고 음반 판매량은 집계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특히 외국 문화가 개방되지 않던 중국에 등려군의 노래가 암암리에 소개되었을 당시에 중국 대륙의 젊은이들은 외국에서 유행하는 유행가를 처 음으로 접하게 되면서 정신적인 자극을 받았다. 군가나 사상가만이 대중적으로 불려지던 70, 80년대 중국에서 등려군의 노래가 신선하게 다가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대 중국에서 록음악을 구사하는 젊은이들이건 발라드 노래를 부르는 가수건 대부분이 등려군의 영 향을 받았다는 말은 과장된 것이 아니다.
등려군의 1990年代와 사망 1994년 일본 NHK에서는 등려군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특집 쇼를 만들기도 했으며, 이때 25주년 기념 쇼를 약속하기도 했다. 등려군은 1995년 구정설을 고향인 대만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남자 친구와 3개월간 여행을 떠났다.
1995년 5월 8일, 홍콩과 대만, 그리고 중국을 비롯해 중국인들이 살고 있는 여러 나라의 신문과 뉴스에서는 대대적으로 속보를 전했다. 중국인들 마음속에 영원한 연인으로 자리하고 있을 것만 같았던 가수 등려군(鄧麗君)이 갑자기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프랑스인 남자친구와 함께 여행을 갔던 태국의 한 호텔에서 사망한 그녀는 당시 42세의 나이였고 사인은 호흡곤란이었다고 전해지며 우리 나라에서도 외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이 소식으로 중국 일대는 눈물바다를 이루었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장례식도 치러졌다. 1969년에 데뷔해 90년대까지 꾸준히 활동을 해온 등려군은 왕정문을 비롯해 현재 활동하고 있는 홍콩과 대만, 중국의 많은 가수들에게 대대적으로 음악적인 영향을 주 었을 뿐 아니라, 중국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그녀의 노래가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을 받았으며 세상을 떠난 후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 사랑에는 변함이 없다.
등려군의 음악 그녀의 노래는 후배가수들에 의해 계속해서 리메이크 되고 있어 우리에게 이미 낯익은 곡들도 있다. 관숙이가 부르는 영화 <타락천사(墮落天使)>의 주제곡 "망기타(忘記他)"의 원곡을 부른 가수가 등려군이고 왕정문이 리메이크한 "단원인장구(但願人長久)"도 마찬가지다.
우리 나라에서는 주윤발과 오천련이 주연을 맡은 <화기소림(花旗小林)>의 주제곡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을 통해 등려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사실 이미 그녀의 몇몇 곡들은 귀에 익다. 특히 화교 출신 가수 주현미가 자주 불렀고 한국어 버전으로도 번안되어 있는 "야래향(夜來香)"의 원곡을 부른 주인공이 바로 등려군이다.
등려군과 한국, 그리고 첨밀밀 등려군이 지난 20여 년간 중국권 음악계의 여왕으로 자리하고 있는 동안에 우리 나라에는 한번도 소개된 적이 없었다.
그러다 진가신(陳可辛) 감독이 연출을 맡고 여명(黎明)과 장만옥 (張蔓玉)이 주인공으로 출현한 홍콩 영화 <첨밀밀(甛蜜蜜)>과 함께 등려군과 그녀의 노래는 국내에 본격적으로 상륙하기시작했다.
<첨밀밀>에 등장하는 한 쌍의 남녀는 각각 다른 꿈 을 안고 중국 대륙에서 홍콩으로 건너가게되고 우연한 만남으로 10년간 애틋한 사랑을 펼 쳐 나간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는 언제나 등려군의 노래가 함께 한다.
영화 <첨밀밀>의 삽입곡은 모두 4곡이다. 영화 제목과 동명인 "첨밀밀"은 인도네시아 민요에 중국어 가사를 쓴 것이다. "월량대표아적심"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영화 <화기소림>의 주제곡 으로 쓰인 바 있으며 <첨밀밀>에서도 영화 배경 음악으로 줄곧 사용된다. 이외에도 "야래향"
"소성 고사(小城故事)"가 있다.
등려군은 영원히 등려군의 노래는 전체적으로 우리 나라의 트롯같은 인상을 준다.
게다가 일본에서 활동을 했던 등려군이기에 엥카와 같은 분위기도 있어 최근에 우리나라에 소개되고 있는 최신 중국 유행가보다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진다.
등려군의 대표곡 "재견아적애인"에서는 등려군의 나레이션이 이렇게 흘러나온다. "안녕! 내사랑! 하지만 난 영원히 당신을 잊지 못할 거예요. 당신도 절 잊지 말아줘요. 어쩌면 우리 앞으로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안 그래요?" 20년 전에 등려군이 한 이 말이 이젠 그녀의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이 되돌려 주는 말이다. 살아있는 모습은 볼 수 없지만 노래로 영원히 함께 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