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찬 (다음 R&D 센터)
2004/12/27
얼마 전부터 모방송사에서 방영한 북한 어린이들이 알아 맞추기 경연을 벌이는 내용을 합성하여 제작한 프로그램을 본적이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북한 어린이들이 미국 회사에서 생산한 대형 노트북으로 문제를 푸는 모습이 보였다.
북한에는 미 통상법상 수출 금지에 묶여 대부분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가 반입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제품들도 이런 제재 조치 때문에 486이상 PC들을 북한에 보낼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이나 중국에서 반입되는 하드웨어가 상당하고 거기에 설치된 영문 윈도우나 일본어 윈도우 사용자가 거의 대부분이라고 한다.
인터넷망이 잘 갖춰져 있지도 않고 컴퓨터 기술을 군사적으로만 이용하려고 한다는 오해도 받고 있지만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서도 북한의 최고 무기 중 하나인 엘리트 전산 기술 양성은 이미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바 있다. 자 그럼, 지금 북한에선 적을 알기 위해 영어를 배우고 MS 제품을 사용하는 수준, 그 이상의 뭔가가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북한에서도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며칠 전 모질라 지역화(Mozilla Localization) 메일링 리스트에 재미있는 메일 하나가 날라져 왔다. 그것은 북한의 대표 컴퓨터 기술 연구소인 조선콤퓨터센터(Korea Computer Center)의 한 연구원이 보낸 것이다.
현재 자신들이 북한 리눅스를 개발하고 있으며 여기에 웹브라우저로 사용될 모질라에 대한 북한 지역화를 거의 완료했으니 공식 지역화 프로젝트(ko-KP)로 등록시켜 달라는 메일이었다. 또한 북한 자체 인코딩 규약(euc-KP)를 모질라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소스 코드를 지원하게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모질라는 넷스케이프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웹브라우저이므로 그 안에 미국 수출금지법상 테러 지원 국가에 수출이 금지된 암호 모듈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모질라 재단에서 북한 지역화를 공식적으로 인정해 줄 리가 만무하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북한에서도 자체 개발 중인 리눅스가 거의 완성단계에 있으며 이를 뒷받침 해줄 데스크톱 애플리케이션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다.
이 메일을 보낸 사람이 속한 조선콤퓨터센터는 1990년 10월 24일 개설됐으며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등을 졸업한 일류급 컴퓨터 전문가 1000여명이 센터를 이끌며 소프트웨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센터에서도 영문 윈도우나 일어 윈도우를 쓰는 사람들이 다수이나 어림잡아 20% 정도가 리눅스를 쓰고 있으며, 다년간 70여명의 인원이 이른바 ‘조선식 한글 운영체제’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나라는 작년부터 한 정부 기관에서 공개 SW를 장려하는 정책을 펴기 시작한 것에 비하면 큰 대조가 된다고 하겠다.
리눅스 기술 수준, 높다
그렇다면 북한의 리눅스 관련 프로그램 개발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2001년도부터 북한에서는 김책공대를 시작으로 윈도우 개발 위주의 프로그램 개발을 리눅스로 옮겨가고 있다.
사실 현재 북한의 통신 수준은 남한의 80년대 수준에 정체돼 있으며, PC 보유 대수도 인구 200명당 한 대 꼴인 대략 13만대 수준이다. 이처럼 하드웨어에서는 크게 뒤지고 있지만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음성과 지문 인식, 암호화,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미 북한에서는 2대 이상의 컴퓨터를 병렬 처리해 복잡한 연산을 수행할 때 CPU의 부하를 분산 처리하는, 기존 리눅스 클러스터링 기술과 북한 언어에 근간한 리눅스, 리눅스용 응용 프로그램 개발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특히 리눅스가 보안에 강하다는 장점을 활용해 해킹, 보안에 관한 연구나 임베디드 리눅스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북한에서 리눅스는 궁극적으로는 자국어로 된 자국 OS의 완성을 위해 필요한 기반이 되며 미국 위주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있는 기반으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은 앞으로도 리눅스에 대한 연구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콤퓨터센터는 오픈소스 기반 조선글 리눅스 배포판 ‘붉은별’을 비롯해 북한말 입력기인 ‘조선말IME’, 다국어 손글입력 프로그램 ‘고려펜’ 등 문자인식, 음성인식, 기계번역, 전자사전 등의 소프트웨어를 보유하고 있다. 공개열쇠(PKI) 암호화 프로그램인 ‘청송’, 자동 지문 검색 체계 등 최첨단 보안관련 프로그램들도 개발했다.
남북간 IT 통일을 이루려면
그러나 남북간의 이질적인 언어 환경 및 이로 인한 차이는 극복해야 하는 과제다. 우선 용어에 있어 인터페이스(Interface)를 ‘사이틀’, 온라인(Online)을 ‘직결’, 디지털을 ‘수자형’이라고 지칭하는 등 차이가 매우 크다.
또한 자모의 순서나 자판의 배열 타자 방식도 모두 다르다. 게다가 한글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우리는 조합형(KSX1001), 완성형(KSC5601) 등을 갖고 있지만 북한에는 조선어 규약(KPS 9566-97)이라는 별도의 코드 형태가 있다.
여기에 앞으로 사용될 국제표준인 유니코드의 자모 배치 순서나 음절 배치 순서는 남한의 사전 순을 따라 만들어졌다. 북한도 이에 해당하는 별도 코드 규약을 갖고 있지만 표준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바 있다. 북한에서 한글 윈도우가 사용되지 않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이처럼 한글로 표현하거나 정렬하는 방식에서는 차이가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대응 용도로 규약의 차이가 만들어지는 문제를 우선 해소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규약에는 특수 문자 코드에 김일성, 김정일 등이 별도로 포함돼 있어 이들의 이름을 적을 때 이용한다. 이런 생각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난관이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세계 최강을 달리고 있는 우리 IT 기술에서 초고속망, 그리고 이에 기반한 웹서비스 및 하드웨어의 비중은 상당히 높으나 소프트웨어 비중은 여전히 낮다. 북한이 오픈소스 기반 기술력을 높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겠으나 우리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저가의 고급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을 대규모로 확보하는 유용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인도나 중국 등의 국가를 대상으로 다국적 기업들이 고급 두뇌를 확보한 사례는 많지만 북한의 고급 인력을 활용한 사례는 별로 없었다.
이미 국내 방송사들은 애니메이션 용역을 주거나 합작 회사를 만들어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왔기 때문에 프로젝트에 따라 고급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이 많이 소요되는 SI 업체, OS 및 데이터베이스와 같은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들이 고려해 볼 수 있는 좋은 대안으로 생각된다. 북한의 엘리트 위주의 교육을 감안해 본다면 IT 인력들은 기존의 MS 위주의 개발 능력과 함께 오픈소스를 기초로 한 자신들만의 기술력을 축적해 왔다고 볼 수 있어 균형 감각도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북한이 어떤 형태로든 남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형태로 간다면 통일 후 한국의 위상은 더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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